지난해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시행한 지 1년이 됐다. 당시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주요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고 수출 절차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했다. 처음엔 한국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년간의 노력 끝에 주요 소재·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한 것은 물론이고 해외기업의 국내 투자유치 및 수입 대체선 확보 등을 통해 실질적인 공급 안정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우리의 성공적 대응 배경에는 핵심기술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속적 투자와 함께 과학기술계의 헌신적 연구·개발 노력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2018년 기준 총 연구·개발 투자는 85조7000억원 규모다.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비중으로 따지면 세계 1위권이다. 하지만 일본과 갈등을 빚었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의 기술 수준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특히 소부장 산업 중 해외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크고 외산 의존도가 높아 정부가 앞장서서 시급히 극복해야 할 분야가 연구장비 산업이다. 연구장비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활동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통해 확보한 기술은 소부장 산업 발전으로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의 첫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연구장비 기술이 반도체·바이오 등의 산업에서 초정밀 측정장비, 의료용 진단장비와 같은 산업장비 분야로 확산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현재 연구장비 분야는 미국 일본 독일 3개국이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 개발해 사용 중인 연구장비는 16.5%에 불과한 실정이다. 주요 선진국은 연구장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반면 국내 연구장비 기업의 대부분은 영세한 기업이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여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위해 우리도 연구장비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경쟁력 있는 연구장비를 개발하고 그 성능을 검증해주는 ‘연구장비 개발 및 고도화 지원사업’을 본격 시작한다. 내년부터는 신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연구자와 기업이 협력해 기존 제품 성능과 품질을 짧은 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한 단기 지원방안도 병행할 계획이다. 또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차세대 연구장비를 개발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연구장비 분야는 기초연구부터 원천기술 개발, 산업 발전으로 이어지는 연구개발 가치사슬의 첫 출발이자 소부장 산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수출 규제에 과학기술계가 뜻과 열정을 모으고 국민 응원이 더해져 성공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연구장비 연구개발 활성화와 산업육성을 통해 과학기술 강국의 꿈이 한층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