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백악관에 제시했다는 외신 보도 이후 미국 내에선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이 포함된 인도·태평양사령부 재배치 검토 방침을 밝혀 감축설에 힘을 실었지만 한국 정부는 한·미 간 관련 논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미 국방부는 18일(현지시간) “우리는 언론의 추측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전 세계 군사 태세를 일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감축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는 대신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문제를 계속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미 국방부는 전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국가국방전략(NDS) 자료에서 몇 개월 내에 인도·태평양사령부 등 해외 몇몇 전투사령부의 재배치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역점 과제 중 하나다.
앞서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국방부가 지난 3월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독일, 한국에서 미군 병력을 철수하도록 미 국방부를 압박한다는 이야기를 몇 달 전에 들었다”며 처음엔 아프가니스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이해했지만 독일, 한국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WSJ 보도 이후 미국에선 주한미군 감축 반대 목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민주당의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장은 워싱턴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우리는 주한미군이 한국군과 협력해 북한의 전쟁 개시를 막아 왔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그렇게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공화당의 벤 새스 상원 의원도 “이러한 전략적 무능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수준으로 취약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주한미군을 감축하려는 의사가 확고한 것인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미 의회는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주한미군 감축 결정을 할 수 없도록 제동 장치를 두고 있다. 주한미군을 현 수준인 2만8500명 미만으로 감축하기 전 의회 승인을 거치도록 한 것이다. 미 의회는 지난해 이러한 조항이 담긴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켰고, 올해에도 같은 내용의 법안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행 NDAA는 미 국방장관이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을 것’ ‘동맹과 적절히 협의할 것’ 두 가지 조건을 입증하면 해외주둔 미군을 감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리 군 당국은 정확한 진의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19일 “현재 미군이 우리 측에 감축 관련 언급을 하거나 협의 중인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미측의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 문제가 이달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다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내 전문가들도 주한미군 조정 논의가 예정된 수순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미군의 해외 주둔 전력이 재배치될 가능성이 높다”며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소속된 주한미군을 조정하는 문제는 미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문동성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