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주택 공급 확대, 특히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대규모 주택 공급 방안을 둘러싼 정부와 여당발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부처의 고위 당국자들이 최근 일주일새 그린벨트 해제 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 가뜩이나 민감한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19일 그린벨트 해제 방안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옳다”며 “그린벨트는 한번 훼손하면 복원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라며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데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이날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는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모든 대안을 놓고 검토해보자는 것이고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라며 “효과, 비용 측면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 총리와 청와대가 그린벨트 해제 문제에 대해 ‘신중론’을 밝힌 것은 최근 정부 부처 장관들이 가뜩이나 민감한 부동산 시장에 일치된 신호를 주지 못해 혼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정부·여당이 그린벨트 해제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다 여론 동향을 보고 이를 후순위로 미루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가 이 문제에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앞으로도 그린벨트 문제를 둘러싼 혼선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는 물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는 최근 집값을 잡기 위해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했지만 그린벨트 문제엔 좀처럼 교통정리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계속 연출했다. 이 와중에 주무 부처가 아닌 추미애 법무부 장관까지 그린벨트 문제에 숟가락을 얹으면서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까지 가중시켰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14일 아침 김현미 국토부 장관 발언부터 시작됐다. 김 장관은 당시 “공급 물량이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당일 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그린벨트 문제를 점검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면서 부처 간 혼선이 일어났다.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은 다음날인 15일 “(해제를) 검토한 적 없다”고 했으나 당정은 같은 날 서울시내 공급 확대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한 장기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그린벨트 해제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서울시 입장도 당일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7일 KBS 라디오에서 “정부가 이미 당정을 통해 의견을 정리했다. 논란을 풀어가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의 언급은 정부와 여당이 그린벨트 해제를 재확인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정부와 청와대는 ‘검토’가 바로 ‘결론’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민감한 시점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차기 대권·당권 주자들도 그린벨트 논란에 ‘참전’한 상태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정말 필수불가결한 곳이 아니면 (그린벨트 지역을) 내놓을 수 있다고 본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김부겸 전 의원은 15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이명박정부 때 수도권에 그린벨트를 해제해 집을 지었지만 투기꾼들에게 먹이만 제공하는 결과가 나왔다”며 불가 쪽에 손을 들어줬다.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19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그린벨트 훼손을 통한 공급 확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강남 요지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투기자산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을 열어놓은 민주당도 내부적으론 온도 차가 크다. 당 지도부는 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반대 의견 역시 만만치 않다. 수도권 지역 한 중진 의원은 “지금 그린벨트를 해제한다 해도 실제 주택 공급까지는 7~8년이 걸린다. 단편적인 대책”이라고 반대했다.
지역구에 그린벨트가 있는 서울지역 한 의원은 “강남은 층고 제한이나 그린벨트 해제 등이 전면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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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임성수 손재호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