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386세대는 당시의 20대를 몹시 마뜩잖게 여겼다.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비판 의식으로 무장하고 저항에 나서야 하건만, 취업 공부에만 몰두한 탓에 결과적으로 이명박정부 탄생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나는 꼼수다’ 출신 방송인 김용민씨는 2009년 기고문에서 당대의 20대를 겨냥해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들에게 “그냥 조용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삽 들고 안전한 삶의 길을 모색해 나가길 바랄 뿐”이라고 비아냥댔다.
1974년생인 김씨는 엄밀히 따지자면 386세대는 아니다. 다만 그가 쓴 글은 386세대가 당시 어떻게 자신들을 규정하고 후속 세대를 재단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그해 6월 우익단체가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급습한 사건을 언급하며 “이명박정부에 분노하는 이들은 ‘80년대 대학생들이 2009년에 부활해 그 자리에 있었다면…’이라며 덧없는 통분만 쏟아냈다”고 전했다. 386세대야말로 젊은이의 ‘이데아’라는 얘기다.
김씨는 절망적인 현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386세대의 자녀들인 당시의 10대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들은 한 해 전 벌어졌던 광우병 촛불집회 때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애들”이라며 “독재 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상에 대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올 내년 또는 내후년쯤이면 아마 우리 대학 사회도 생존의 쟁투장이 아니라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이 될 거라 믿는다”고 단언했다.
현실 모순의 책임을 20대에게 지우고 386세대의 자녀에게서 대안을 찾는 건 김씨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오늘날이면 ‘막말’의 범주에 무리 없이 들 만한 김씨의 기고문이 나오기 2년 전, 한 사회학자는 계간지 대담에서 “교육 문제에 관한 한 유신 세대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386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녀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386세대 버전의 ‘교육 입국론’은 그 논리적 정합성과 무관하게 기성 사회학자가 공론장에서 공공연히 언급할 만큼이나 영향력 있는 담론이었다.
2020년의 시각에서 당시 유행했던 담론을 회고하자니 헛웃음만 나온다.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 운운하는 부분에서는 박장대소를 참을 수가 없다. 한 사회학자가 대담에서 자랑스럽게 언급한 ‘조금 다른 방식’의 교육은, 문재인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물러난 어느 진보 명사의 독특한 자녀 교육 방식을 돌이켜보면 그저 씁쓸할 뿐이다.
특히 386세대의 자녀 세대라 할 수 있는 오늘날의 20대가 60대와 함께 문재인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인구 집단이라는 점은 블랙코미디라 할 만하다. 도대체 가족 간 소통이 어떻게 이뤄진 건지, 386세대는 자녀 세대가 내세우는 ‘공정’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20대는 성추행 의혹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64세 남성 고위 공직자의 스캔들을 두고서도 부모 세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씨의 말마따나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현상에 대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나.
더욱 놀라운 대목은 김씨가 11년 전 기고문에서 ‘희망이 없다’고 매도했던 당시의 20대가 현재 여론조사 수치만 놓고 보면 문재인정부의 핵심 지지층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김씨는 당시 20대에게 “(10대는) 너희 세대를 앞지를 것이고 곧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예언을 한 바 있다. 만에 하나 이 예언이 실현된다면 아무래도 문재인정부와 현 집권세력이 큰 곤욕을 치를 것 같은데, 이 지점에서 김씨 본인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조성은 정치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