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젠더특보 “실수하신 것 아니냐” 보고 직후 경위 파악 나섰다

입력 2020-07-17 00:02
취재진이 16일 서울 성북경찰서 앞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대기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경위를 수사하는 경찰은 전날 고한석 전 비서실장에 이어 이날 서울시 관계자를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연합뉴스

‘박원순의 사람들’로 불리는 서울시 비서실이 ‘미투 폭로자’를 색출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보고한 정황이 드러났다. 외부로부터 미투 움직임을 가장 먼저 감지한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가 직접 경위를 조사했고, 그 결과를 고한석 전 비서실장을 통해 박 전 시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비서실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문제에 처음 반응한 건 임 특보가 8일 오전 외부에서 ‘박 시장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였다. 임 특보는 오후 3시 시장 집무실로 찾아가 “실수하신 것 있으시냐”고 물었고, 박 전 시장은 대답을 피했다. 임 특보는 앞서 언론에 “성추행 사실인지 몰랐다”고 했지만,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16일 “이미 이때 임 특보와 박 전 시장이 성추행 문제임을 짐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특보는 보고 직후 곧장 경위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때까진) 임 특보와 일부 비서관만 참여했다”고 했다.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오후 4시30분보다 1시간30분이나 빠른 시점이다. 서울시 정책에서 성평등을 구현하라고 임명한 젠더특보가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폭로인 색출은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피해자 측은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를 주변에 여러 차례 호소했다”고 했다. 당시 비서실에는 피해자가 직접 성추행 피해를 털어놨다는 5급 별정직 공무원도 재직 중이었다.

박 전 시장은 오후 11시쯤 임 특보와 비서관 2명을 만나 대책회의를 한다. 임 특보는 이때 1차 조사 내용을 보고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임 특보는 8일 늦은 밤이나 9일 새벽 회의 결과를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추론된다. 이 관계자는 “젠더특보가 비서실장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 전 실장은 9일 오전 9시~10시10분 시장 공관에서 박 전 시장을 만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서실장이 젠더특보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확인하려고 공관에 간 걸로 안다. 그때 몇 가지 확인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은 고 전 실장을 만난 34분 뒤인 오전 10시44분 공관을 나섰고, 택시로 1.8㎞ 떨어진 와룡공원에 도착한 다음 오후 1시39분 고 전 실장과 통화한다. 이후 오후 2시42분쯤 와룡공원 근처에서 누군가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

당시 비서실은 “피소 사실은 실종신고 직전에야 알았다”고 했다. 실종신고 시간은 오후 5시17분이다. 고 전 실장도 “박 전 시장은 ‘미투가 터질 것 같다’는 정도만 알고 극단적 결정을 한 것”이라며 “나도 박 전 시장과의 마지막 통화 때 피소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이 피소 여부까지 알았는지에 대한 수사는 속도가 붙고 있다. 대검찰청은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접수된 고발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내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도 연일 전현직 서울시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서울시 관계자 2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사망 직전 통화를 나눈 이들의 목록이 담겨 있을 확률이 높아 피소 사실 유출 의혹을 풀 실마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주환 황윤태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