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 여성 비서들에게 시장 기분 좋게 하는 역할 요구”

입력 2020-07-17 04:05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및 성추행 사례가 추가로 폭로됐다. 서울시 전현직 공무원이 피해자 A씨를 회유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전직 비서 A씨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추가 사례를 공개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주말 새벽에 여성 비서에게 함께 운동할 것을 요구했다. 또 비서실에서 여성 비서들에게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역할을 요구했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비서실이 성희롱과 성추행이 발생하기 쉬운 업무 환경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박 전 시장이 운동 후 샤워실을 이용하면 비서가 속옷을 근처에 갖다줘야 했고 벗어둔 운동복과 속옷도 비서가 공관으로 보냈다고 한다.

박 전 시장이 낮잠을 자면 깨우는 것도, 하루 두 차례 실시된 혈압 측정도 여성 비서의 임무였다. 그는 “자기(A씨)가 재면 내가 혈압이 높게 나와서 기록에 안 좋다”는 성희롱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A씨는 다른 사람의 혈압 측정을 건의했지만 묵살됐다. 박 전 시장은 직원이 승진하면 타 부서로 이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천명했지만 A씨의 승진 전보 요청은 거부했다.

피해자 측은 박 전 시장의 사망 이후 전현직 서울시 고위직 공무원이나 정무보좌관, 비서관 가운데 일부가 A씨에게 연락을 취해온 사실도 공개했다. 이들은 A씨에게 ‘진영론이나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여성단체들은 지속적인 수사와 성폭력 문화 개선을 요구했다. 서울시와 더불어민주당, 여성가족부를 향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등으로 호칭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윤정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여성폭력방지법 등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을 통해 보호 또는 지원을 받는 분을 피해자로 보는 건 명확하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여가부가 낸 입장문에서 ‘고소인’이라고 표현한 건 중립적인 용어를 쓴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면 피해자 측 입장도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윤태 강보현 김영선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