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러시아 시베리아와 북극권에 발생한 폭염 현상은 지구온난화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구온난화가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을 그저 가설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나왔다는 평가다.
다국적 기후변화 연구단체인 ‘월드 웨더 애트리뷰션(WWA)’은 15일(현지시간) 지난 1~6월 시베리아 전역에서 나타난 이상고온 현상을 분석한 결과 인간의 영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영국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등의 기후연구기관 소속 과학자들로 구성된 이 국제연구팀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시베리아 지역에 장기적 폭염 현상 가능성을 최소 600배에서 최대 수만배 높였다고 결론지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배출이 시베리아 기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70개의 모델을 설정해 수천번의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실시하고 각각의 산출값을 비교했다. 그 결과 올해 시베리아에서 나타난 장기간의 이상고온 현상은 석탄, 석유, 가스를 연소하는 인간의 활동이 없었다면 8만년에 1번꼴로 일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재의 실제 기후 조건을 적용할 경우 폭염 현상은 130년에 1번꼴로 재발할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시베리아 폭염 연구는 이제까지 조사된 그 어떤 극단적 이상기후 사건보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사이 강력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평균 기온이 평년 대비 섭씨 5도가량 상승하는 등 시베리아 북극권 지역은 이상고온으로 신음하고 있다. 역대 가장 더웠던 지난해 6월 기온을 뛰어넘은 수치다. 극동 사하공화국(야쿠티아)의 베르호얀스크 지역은 지난달 20일 최고기온이 관측 이래 가장 높은 38도까지 치솟았다. 세계기상기구(WMO)는 북극 지역에서 관측된 가장 높은 기온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2050년까지 시베리아 기온이 1900년에 비해 2.5~7.5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고온 현상은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을 녹이고 대형 산불까지 발생시키고 있다.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면서 땅에 묻힌 송유관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구팀은 송유관이 손상되면 땅속에 묻힌 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