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피소와 극단적 선택으로 ‘권력형 성폭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8년 미투운동 열풍이 불면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마련됐지만, 권력형 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교계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한국교회부터 솔선하길 요청했다.
김판임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는 “성폭력은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라며 “누구든 성폭력을 가했을 때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법적 처벌과 함께 성인지 교육도 철저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직원이나 구성원이 아닌 지도층에 대한 별도 성교육 필요성도 제기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혜숙 목사는 “젊은 세대에 비해 중년 이상의 남성 지도층은 제대로 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며 “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무지가 남아 있는 상태에선 성 의식의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브리지임팩트 성교육상담센터장 정혜민 목사는 “지도층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절실하다”며 “교회에서도 성교육을 할 때 교사와 학부모, 아이들뿐 아니라 반드시 담임목사가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보호할 수 있는 독립적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예리 서울YWCA 여성참여팀 부장은 “수장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선 구성원이 섣불리 쓴소리를 할 수 없다”면서 “피해자가 성적 피해를 봤을 때 조직 내에서 제보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독립적 기구가 있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정 목사도 “권력형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계권까지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피해자가 눈치를 보거나 자리를 걱정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원하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교계부터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교계에서 성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세대가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교회부터 남성 위주의 구조를 허물고 여성도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이런 부분 때문에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는 청년이 많은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 늘 수 있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