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주택 공급 확대 방안으로 그린벨트 해제 논의를 공식화하면서 서울시의 ‘박원순표’ 정책 표류가 현실화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은 사망 사흘 전인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한 보물”이라며 그린벨트 해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15일 정부와 여권에서 그린벨트 해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자 서울시는 ‘미래 자산인 그린벨트를 흔들림 없이 지키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2018년에도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을 마련하면서 보존 가치가 낮은 서울의 3~5등급 지역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했지만 당시 박 시장의 반대로 그린벨트 해제는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서울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권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데다 외풍을 막아줄 시장이 없기 때문에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끝까지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 서울시내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유지와 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매입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박 전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도 보류될 공산이 크다. 서울시 관계자는 “권한대행체제는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박 전 시장이 계획했던 사업들 중 아직 착수하지 않은 것은 보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매년 신혼부부 두 쌍 중 한 쌍에게 공공주택을 제공하겠다며 박 전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공공임대주택 40만호 공급 사업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박 전 시장은 지난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 “남은 임기 3년 동안 신혼부부 절반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을 기존 목표인 매년 1만7000가구에서 2만5000가구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중요한 정책이 공공임대주택”이라며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면 서울시 공공임대주택이 약 40만 가구로 전체 주택의 10%가 넘지만 돈을 더 쓰려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박 전 시장이 2018년 여름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달살이를 계기로 강남과 강북의 균형 발전을 위해 계획했던 공공기관 이전 문제도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강남권에 있는 인재개발원과 서울연구원,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옥을 강북 3개구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박 전 시장이 추진했던 표준도시 사업도 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 박 전 시장은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며 새로운 방역 모델로서 사회적 불평등에 대응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전환을 선도하는 표준 도시를 설계하겠다고 했었다. 국립의료원을 용산구 방산동 미 공병단 부지로 이전하고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하기로 보건복지부와 MOU를 체결했지만 실제 성사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2050 대책과 서울판 그린 뉴딜 정책도 차기 시장이 뽑힐 때까지 보류될 가능성이 높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