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 명분 챙긴 제주항공 “정부 지원 보고 결정”

입력 2020-07-17 04:09
사진=연합뉴스

이스타항공과의 인수·합병(M&A) 카드를 쥔 제주항공이 정부에 추가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주항공은 16일 “이스타항공이 미지급금을 해결하지 못해 계약 해제 조건이 충족됐다”면서도 “정부의 중재 노력을 고려해 최종 결정을 미루겠다”고 밝혔다. 이스타항공이 대화를 요청했지만 업계에선 M&A 파기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제주항공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스타항공이 마감일까지 이행해야 하는 선행조건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다”며 “M&A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제주항공은 “정부가 중재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계약 파기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을 연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일 제주항공은 “이달 15일까지 체불임금, 유류비 등 미지급금 1700억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이스타항공에 통보했다.

업계 안팎에선 계약 파기 명분을 챙긴 제주항공이 정부에 추가 지원을 압박하는 모양새로 본다. 당초 제주항공이 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에 현금 1700억원을 요구한 것 자체가 계약 파기의 책임을 덜기 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선행조건을 이행하라는 마감일을 줬는데도 이스타항공이 지키지 못했다’는 명분을 쌓아 계약 파기 시 발생할 수 있는 소송을 대비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날 제주항공 자료에도 ‘이스타홀딩스가 주식매매계약의 선행조건을 완결하지 못해 계약을 해제할 권한을 갖게 됐다’는 등 명분을 분명히 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정부의 추가 금융·정책 지원 여부에 따라 M&A 결과가 좌우될 전망이다. 이미 정부는 17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제주항공은 추가 금융 지원이나 노선 배정 등을 요구한다. 최근 제주항공도 코로나19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놓인 상태다.

이스타항공은 반박자료를 내고 “미지급금 해결은 선행조건이 아니다”며 “선행조건은 이미 완료했다”고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그간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미지급금이 선행조건인지 여부에 대해 정반대의 말을 해왔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에 마지막 대화를 요청했지만 제주항공은 묵묵부답이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