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정확하지 않은 위로

입력 2020-07-17 04:02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최근호를 읽다 애도시 한 편에 눈길이 멈췄다. “가을바람 스산하고 부슬부슬 비 내리는데/ 솔바람 홀로 짝해 쓸쓸히 누웠구나/ 평소에도 네 어미를 떠나지 못했는데/ 빈 산에서 오늘밤을 어이 보내려나.” 조선 중기 문신 이경석이 요절한 자식을 그리며 쓴 만시(輓詩)다. 이 시를 인용한 이홍식 성결대 교수는 “가을밤 스산한 비바람에 홀로 묻혀 있을 자식 생각에 이경석은 오랫동안 잠자리에 들지 못하였다. 생전에도 유난히 어미 품을 떠나지 못하던 아이였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으랴”라고 적었다.

자식을 앞서 보낸 부모의 슬픔을 헤아리기는 힘들다. 오죽하면 부모나 조부모보다 자식이나 손주가 먼저 사망하는 슬픔을 참척(慘慽)이라 할까. 하물며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딸을 둔 부모의 슬픔이라면….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진다. 그렇게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는 지난 10일 “숙현이의 비극적인 선택 이후 하루하루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참혹한 슬픔이다.

부모의 슬픔은 끝을 알기 힘들지만 비극적 사건 이후 이를 수습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다. 사건이 알려진 후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합당한 처벌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최숙현 선수의 봉안당을 찾아 꽃을 놓고, 최 선수의 생전 동료들을 만나 “그동안 지켜주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관련 체육 단체는 가해자인 김규봉 감독 등을 조사한 뒤 영구제명을 포함한 징계를 내렸다.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들로부터의 의견 수렴 과정도 잇따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 1월 심석희 선수에 대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사건이 알려진 이후 흐름과 큰 이물감 없이 포개진다. 당시 문 대통령은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한 조사와 수사 그리고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에 며칠 앞서 당시 노태강 문체부 2차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심 선수와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해자의 소속 연맹은 조 전 코치에 대한 영구제명을 확정했다. 스포츠 및 인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스포츠혁신위원회가 7차례 혁신안도 권고했다. 재발 방지책을 담은 법이 국회에서 기다렸다는 듯 발의되는 모습 역시 1년6개월의 시차를 둔 두 사건의 공통점이다.

이쯤 되면 체육계에서 터져 나오는 슬픔의 악순환은 대책이나 수습책의 부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피해자의 슬픔에 제대로 가닿지 못한 근본적인 모자람이 있었던 건 아닐까. 사건이 알려진 후 한 선수 출신 국회의원은 최 선수의 동료에게 전화해 “경주시청이 독특한 거죠?”라고 물었다. 공교롭게도 최 선수 사건이 알려진 뒤 얼마 안 있어 한체대 핸드볼팀의 폭력 사건이 보도됐다. 이런 상황에서 체육계 내부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같은 팀이 또 없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심 선수 사건도 그녀가 용기를 내기 전까지 조 전 코치의 범행은 폭력에 그친 줄 알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그간 우리 사회는 체육계 폭력 피해자의 슬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부르고 설익은 위로만 반복해 온 것인지 모른다. 이제는 잠시 멈추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길에 가까워지는 방법이 될지 모른다.

김현길 문화스포츠레저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