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병원 치료를 끝내고 퇴원한 뒤 당분간 전북 전주에서 휴양차 묵기로 했다. 잠시 쉬며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비록 두 팔을 잃은 두 아이의 아버지였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를 멋지게 해내는, 노력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당시 아내는 왜 하필 처가가 있는 전주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내겐 예전에 몇 번 들렸던 전주가 음식도 맛나고 사람들 인심도 좋은 것 같아 쉬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전주에 머물며 두 팔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약초를 키워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의수에 펜을 끼운 채 글씨 연습을 하던 내 곁으로 이제 막 4살 된 아들 녀석이 뭔가를 손에 들고 왔다. 아들 녀석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스케치북을 하나 내밀었다.
“아빠! 그림 그려줘요!”
순간 멈칫했다. 두 팔이 없는 아비에게 그림을 그려달라니. 역시 아직 애는 애인가 싶었다. 허탈해하며 아들을 쳐다봤다. 아이의 눈을 본 나는 그 초롱초롱한 눈빛에 압도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들은 이미 청소하던 아내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뒤였다. 아내는 무심코 “아빠한테 그려달라고 해”란 말을 던졌고, 아들은 그 길로 날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 어떤 그림을 그려줄까” 하고 물었다. 아들은 “참새요”라고 답했다. 그림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두 팔을 잃은 지금 아들에게 어떻게 그림을 그려줄 수 있을까 싶었다. 다시 아들을 바라봤다. 여전히 똘똘한 눈빛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적절한 펜을 찾아 의수에 끼웠다. 참새가 나온 그림도 찾았다. 덜덜 떨리는 의수에 펜을 최대한 고정한 채 그림을 보면서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쉽지 않았다. 의수는 흔들리고 어깨는 아프고 땀도 났다. 한 땀 한 땀 수놓듯 선을 그었다. 아침에 시작한 그림 그리기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결국, 참새 한 마리 그림이 완성됐다. 88년 2월 1일이었다. 의수를 낀 내 손으로 그린 첫 작품이었다. 그림을 받아든 아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다고 했다. 아들의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그동안 병원 치료받느라 제대로 못 해준 아버지 노릇을 한 것만 같았다. 이후에도 난 종종 아들의 요청에 독수리, 꿩 등을 그려줬다. 내 그림을 본 아내와 처형도 놀라며 좋아했다. 이참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도 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내 속엔 점점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수록 왠지 모르게 나도 신이 났다. 온종일 아픔을 참아가며 그려야 했지만, 완성된 그림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아들과 다른 가족들을 보니 그림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