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를 막론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을 질색하는 시대지만, 나이 덕에 편안해지는 것들도 있다. 직장 일도 슬슬 손에 익고, 연차가 쌓이면서 식은땀을 흘릴 만큼 당황할 일도 줄어든다. 십대 시절처럼 친구의 사소한 한마디, 마음에 안 드는 옷이나 머리 스타일 탓에 종일 감정에 기복이 넘치는 일도 차차 잦아든다. 패셔니스타는 아니어도 그런대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차림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면서, 귀찮은 쇼핑에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된 것도 나름 나이 듦의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가 불편해 치과에 갔다. 고질병인 잇몸 문제라 익숙하게 치료를 받고 마무리하던 중에, 치과선생님이 잠시 칫솔질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칫솔질이야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의 치과학 수업까지 배우고 평생 해오던 것. 굳이 뭘 또 배우나 싶은 마음에 어서 이 불편한 의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배운 것은 그동안 습관대로 해오던 것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었다.
선생님 말에 따르면 이제 내 나이에는 충치가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고 치아보다 잇몸 건강이 우선이니 예전처럼 치아 면에 칫솔질을 하기보다는 잇몸과 이 사이의 공간을, 이왕이면 그것에 특화된 용도의 칫솔로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젊을 때 터득한 대로 자만하고 지냈다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내 몸 관리마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 셈이다.
잘 어울리던 머리 모양이나 옷 스타일도 갑자기 어색하고 안 어울릴 때가 온다. 익숙하다고 안이하게 사는 것은 세상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한계를 만든다는 점을 새로운 칫솔질을 배운 그날 이후 깨달았다. 이 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겉이건 속이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손에 익지 않아 여전히 서툰 새 양치질로 끙끙댈 때마다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