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은 초복이다. 한여름 삼복더위의 서막이다. 맹위를 떨치는 더위에도 시원한 곳이 있다. 충북 제천 얼음골. 돌 틈에서 냉기가 나와 한여름에 얼음이 언다는 신비의 장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한적한 곳에서 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
얼음골 생태길은 제천시 ‘청풍호 자드락길’ 7개 코스(총 길이 58㎞) 중 제 3코스다. 수산면 능강리 능강교를 출발해 만당암과 취적대를 거치고 종점인 얼음골에서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온다. 왕복 10.8㎞로 4시간 남짓 걸린다.
얼음골 생태길은 능강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능강계곡의 발원지는 아름답기로 이름난 금수산(1016m)의 서북사면 8부쯤이다. 이곳에서 청풍호로 흘러드는 능강계곡의 물길은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맑게 굽이치고, 깎아 세운 것 같은 절벽과 바닥까지 비치는 맑은 담(潭), 쏟아지는 폭포수 등 보기만 해도 시원한 절경을 이룬다.
계곡에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에 선비 권섭이 이름을 붙여 ‘능강구곡’을 정했다. 권섭은 우암 송시열과 수암 권상하라는 당대 최고 학자들의 학맥을 이었지만 단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산천을 유람하며 지냈다. 1곡 쌍벽담과 2곡 몽유담 등 일부가 청풍호에 수몰되면서 현재 연자탑, 만당암, 취적대 등 몇 곳만 남았지만 깊고 아늑한 계곡은 여유를 갖게 하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준다.
출발부터 울창한 숲길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계곡과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함을 가져다준다. 그 길을 따라 1.6㎞ 지점에 이르니 돌탑이 무더기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돌탑군에서 8곡 만당암까지는 2.2㎞. 햇빛이 간간이 비치는 숲속을 10분 정도 걸으니 계곡 안에 커다란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수십 명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만당암이다. 이어 편안한 숲길을 800m 정도 지나면 능강계곡 최고의 경관인 9곡 취적대가 반긴다. ‘푸른 물이 떨어지는 넓적한 바위’로, 암반에 걸린 취적폭포와 그 아래 검푸른 취적담과 함께 절경을 자랑한다.
이곳부터 길은 좁고 가파르게 변한다. 자그마한 출렁다리를 건너서 500m쯤 가면 계곡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신선봉으로 이어지고 오른편으로 굽어들면 얼음골과 금수산으로 향한다.
150m쯤 가면 ‘한여름의 신비’ 얼음골이 있다. 한양지(寒陽地)라고도 부른다. 삼복염천에만 얼음이 나는 빙혈이 있다. 초복에 얼음이 가장 많다고 한다. 너덜지대 곳곳에 마련된 냉풍 체험 장소에 다가가니 찬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이 나오는 곳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자 한기가 밀려왔다. 트레킹하면서 흘린 땀이 말끔히 씻기고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하다.. 넓게 조성된 나무데크 바로 앞에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옹달샘’이 있다. 한 모금 마시니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능강계곡의 왼쪽 능선에 정방사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월악산과 청풍호가 발아래 펼쳐진다. 청풍호 너머 월악산 정상인 영봉을 필두로 일대 산의 무리가 중중첩첩 이어진다. 해 뜨기 전 월악산 골짜기와 청풍호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산자락을 휘감고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선경을 빚어낸다. 이곳을 찾은 조선 중기 학자 삼연 김창흡은 ‘창으로는 월악산을 긷고 손바닥에는 구담봉을 올려놓았네’라는 시를 남겼다. 맑은 날도 좋지만 비 오는 날 풍경이 운치있다.
▒ 여행메모
능강교 옆 넓은 무료주차장 이용
국립제천치유의숲 프로그램 다양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충북 제천의 능강교에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나들목에서 빠지면 가깝다. 금성 방면 82번 국도를 타고 청풍호로와 옥순봉로를 따라가면 나온다. 넓은 무료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인근 상천리 산수유마을은 금수산 등산로 입구다. 금수산 등산로를 따라 걷다 초입에서 왼쪽 망덕봉 쪽으로 올라서면 용담폭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금수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국립제천치유의숲은 산림복지서비스에 한방치유를 접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치유 프로그램이 입소문 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능강교에서 가까운 곳에 솟대를 테마로 한 능강솟대문화공간이 있다. 언덕에 ‘ㅎㅁㅅㄷ’이라는 하얀 조각이 눈에 들어오는데, ‘희망 솟대’라는 뜻이다. 다양한 솟대 작품뿐 아니라 우리나라 희귀 야생화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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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