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스마트 투자 세대의 등장

입력 2020-07-16 04:01

굳이 나누자면 필자는 X세대다. 서태지라는 상징 때문에 신세대라 불리기도 했지만 X세대는 과거 세대와 차이점이 별로 없다. 한 포털사이트 용어사전 정의처럼 ‘정확한 특징을 묘사하기 어려운 모호한 세대’다.

X세대가 차별화에 실패한 건 두 번의 충격파 영향이 아닐까 싶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와 가정을 꾸린 후 몰아친 글로벌 금융위기가 X세대를 급속히 보수화시켰다는 얘기다. 물론 ‘뇌피셜’(내 생각만을 근거로 한 추측)이다. 하지만 자산 급등락 시기에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 기존 질서에 순응해 간 것만은 사실이다. IT 버블 당시 고삐 풀린 증시 랠리에 동참했다가 ‘쪽박’을 찼고, 참여정부 때 “지금 놓치면 영원히 내 집이 없다”며 ‘패닉 바잉’에 나섰다가 하우스 푸어가 됐던 실패담을 많은 X세대가 공유하고 있다.

베이비붐 마지막 세대로 풍요롭게 성장하며 스스로 특별하다 자부하며 자랐던 이 세대 상당수의 경제적 실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 X세대가 경제활동을 본격화하던 30대 당시 부상했던 행동경제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이 학문은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전제에 반기를 든 대니엘 카너먼 교수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결정의 합리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확증 편향’과 ‘손실 회피’를 꼽는다. 모든 정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판단하고, 이익을 얻기 위한 위험보다 현재 보유한 것의 손실을 더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A가 호재성 정보를 듣고 매입한 B사 주식 가격이 반 토막이 나도 A는 손절매하지 않고, 심지어 그 정보가 거짓이라고 밝혀져도 손실을 좀체 인정하지 않고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식을 샀던 처음 선택이 올바른 판단이며 이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다 결과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보고 만다는 얘기다.

그런데 X세대의 후배들은 달라졌다. 상당수가 학자금 대출 빚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한 현재의 30대, 이른바 밀레니얼세대는 경제 이슈에 민감하다. 사실 비합리적인 선택이나 소비를 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초저금리 상황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 자산이 축소된다는 위기의식도 강하다. 서울 강남엔 못 들어가도 강북 수도권에 살 집이 수두룩하다고 생각했던 X세대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이들 30대는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를 차곡차곡 사 모았다. 전 연령대 중 매수 비중이 가장 높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가가 폭락했던 지난 3월 이후엔 동학개미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X세대인 언론사 데스크들이 자신의 30대를 떠올리면서 이들이 패닉 바잉, 즉 다급한 마음에 비합리적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해석들을 내놓았지만 들여다보면 확연히 양상이 다르다.

밀레니얼세대는 유튜브 등에서 접한 디지털 콘텐츠로 무장하고, 재테크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부동산 전문투자자들이 쓰는 용어를 동원해 유동성과 아파트가격의 상관관계와 기간별 예상 수익률을 술술 풀어낸다. 매수 후보지가 있으면 해당 지역 매물 리스트를 엑셀을 활용해 분석하고, 임장(집을 사기 전 근처를 돌아보는 것)도 한다. 갭투자가 여의치 않다고 생각하면 해외 주식에도 눈을 돌린다. 뒤늦게 따라갔다가 번번이 외국인과 기관의 ‘밥’이 됐던 선배 개미들과 달리 ‘공포의 시간’에 과감히 뛰어드는 용기도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에게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특별공급을 기다리라고 하고, 아파트 잘못 사면 세금만 더 내게 된다고 겁을 주고 있다. 그들을 잘 알고 하는 소리일까.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