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스크린에 펼쳐진 소리의 장관

입력 2020-07-16 00:01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세상을 떠났다. 많은 영화에 혼을 불어넣은 그의 음악은 때론 감독과 배우를 압도하는 영화 홍보 문구가 됐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엔 인간애 가득한 멜로디의 향연이 있다. 심지어 마카로니 웨스턴(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미국 서부극) 영화에도 말이다. 이 가운데 내 감성을 사로잡는 명작은 ‘미션’(1986)이다. 영화의 배경은 17세기 남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정복과 예수회 선교사와 원주민 선교사 간 서로 다른 두 ‘미션’의 대립과 갈등을 다룬다.

개봉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믿음이 좋은 편도 아니었으나 이 종교 소재의 영화를 보기 위해 종로의 한 극장으로 향했다. 주연 로버트 드니로의 팬이어서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영화의 감동과 더불어 오묘하고 경건한 OST의 압도적 느낌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영화 속 선율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머릿속에서 음악을 되냈다.

내가 좋아하는 트랙은 이구아수 폭포의 장대한 풍경 위에 펼쳐지는 ‘온 어스 애즈 잇 이즈 인 헤븐(On earth as it is in Heaven)’이다. 초반부 환상적인 코러스를 지나면 오보에 주제의 선율과 독특한 남미 원주민의 비트가 역설적인 조화 속에 스크린을 수놓는다. 스타카토 기법으로 노래하는 코러스도 이 곡에선 인상적인 악기가 된다. 모리코네는 유럽의 성가와 남미의 리듬, 이 서로 다른 문화유산을 절묘하게 배합해 최선의 미학적 성취를 이뤘다.

가장 유명한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두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원주민 선교를 위해 접근을 시도하는 가브리엘 신부는 밀림에서 원주민을 만나자 오보에를 연주한다. 경계심을 보이던 과라니족 사람들은 이 생경한 음악 소리에 동화돼 신부를 자신의 마을로 데려간다. 예술적 교감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이 경계의 빗장을 풀고 화합하는 인상적 장면이다.

또 하나의 명장면은 동생을 살해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노예상인 멘도사가 선교지로 순례의 길을 걷는 장면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지배했던 무거운 무기와 갑옷을 짊어지고 험한 여정을 지속한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원주민은 그에게 칼을 들이대지만, 곧 그의 무거운 짐의 사슬을 끊으며 그를 용서한다. 하나님뿐 아니라 자신이 학대한 원주민에게 용서를 받으며 그의 삶은 거듭난다. 오열하다 마침내 활짝 웃으며 환희의 축복을 나누는 장면에서 ‘가브리엘의 오보에’ 선율이 흐른다. 이 장면에서 은총이 다스리는 거룩한 시공간을 만나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은 이 선율에 이탈리아어 가사를 붙여 ‘넬라 판타지아’란 제목으로 노래해 이 곡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나는 환상 속에서 본다네. 모든 이가 정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영화와 음악을 완벽하게 이해하며 붙인 가사와 브라이트만의 신비한 음성이 어우러져 큰 감동을 선사하는 명곡이 됐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며 비극으로 끝나지만, 폐허 속에 살아남은 아이들은 칼 대신 부서진 바이올린을 들고 숲속으로 간다. 마지막 장면에 양심을 저버린 가톨릭 주교의 독백이 나온다.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전해진다.” 이 말은 기독교와 교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의 정신이 살아있는 제자들의 정신에 이어져 그분의 뜻인 하나님 나라 이상을 지속하고 확장해 가는 것이다. 영화 속 신부들처럼.

16일부터 CGV에서 모리코네의 명작을 재개봉해 그를 추억한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미션’을 다시 봐야겠다. 모리코네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영화와 음악 속에 남긴 인류애와 평화의 이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윤영훈 성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