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0월 29일, 많은 이들에게 그저 평범한 월요일이었을 그날이 어찌 보면 내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중요한 하루가 됐다. 공장의 변전실 내부에 쌓인 먼지를 청소하는 날이었다. 나는 당시 전기설비관리책임자로 근무했다. 대학 졸업 후 이직해서 얻은 두 번째 직장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직원들을 데리고 내부 설비 정비에 나섰다. 전기설비 특성상 먼지가 쌓이면 누전 사고가 날 우려가 있었다. 3선이 한 번의 동작으로 개폐되는 전원(라인) 스위치를 차단한 뒤, 나머지 스위치도 차단하고 작업에 나섰다. 작업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이를 지켜보며 감독하고 있었다. 작업 지시를 하던 내 눈에 위쪽에 있는 한 전기설비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청소가 안 된 상태였기에 직접 청소하려고 구조물을 타고 올라섰다. 당연히 전원이 차단됐을 것으로 생각한 나는 거리낌 없이 청소할 뚱딴지, 일명 애자에 손을 갖다 댔다.
‘번쩍’하고 불꽃이 튀며 그대로 고꾸라져 아래로 떨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3개의 선이 동시에 차단되는 라인 스위치 중 하나가 차단되지 못했다는 얘길 들었다. 한국전력에서 들어오는 전기를 차단하는 스위치였다. 마침 내가 올라가 손을 보던 쪽 스위치가 고장이 났다. 보통 라인 스위치를 내리면 한 번에 3선의 전기가 차단되기에 고장이 났을 거란 생각을 못 했다.
전선에 손을 댄 뒤로 내 기억은 전혀 없다. 얼마가 지났는지도 모른 채 의식이 돌아오며 겨우 눈을 떴다. 일주일 만에 깨어난 것이다. 이후로도 중환자실에서 27일간 생과 사를 오가는 힘겨운 싸움을 했다. 그러다 점점 의식이 온전해졌다. 몸을 보니 멀쩡하게 있어야 할 두 팔이 보이질 않았다. 옆에 있던 아내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저 ‘요즘엔 의수가 발전해 내가 좋아하는 낚시도 할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 덕인지 나도 생각 외로 담담해졌다.
사고 당시 동료들은 의식을 잃은 날 미처 구급차로 이동할 겨를도 없이 자가용을 이용해 근처 대형 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떨어지면서 두개골이 함몰돼 머리 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다. 두 팔에 화상을 입어 양쪽 손목을 절단했으나 계속 썩어들어 가 다시 한번 팔꿈치 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12번의 지루한 수술이 이어졌다.
전기와 관련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땐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공부할 때도 이런 종류의 사고와 위험성을 숱하게 배운다. 내게도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기에 안전에 만반을 기한다. 그런데도 사고는 순간적으로 불현듯 찾아온다. 29세 청년이자 결혼 2년 차 남편, 이제 막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내게 닥친 시련은 잔인하리만치 가혹했다. 게다가 둘째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반밖에 안 됐던 때였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