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업무만 9년 차 베테랑인 조철민 포천시 방역팀장에게 올여름은 낯설기만 하다. 지난 13일 경기도 포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조 팀장은 “방역부서의 피로도가 높다”고 운을 뗐다. 지금까지는 조류 인플루엔자(AI)·구제역이 성행하는 겨울철만 지나면 여름에는 한숨 돌렸다. 하지만 올해는 야생멧돼지를 중심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이어지면서 쉴 틈이 없다.
특히 고역인 점은 방역복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기라도 하지만 무더위 속 방역복은 쥐약이다. 조 팀장은 “현장 점검을 위해 매일 2시간 정도는 방역복을 입는데, 축사를 돌아보고 나면 비닐장화에 땀이 흥건하다”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포천시에서는 아직 확진 농장이 없다는 점 정도다. 조 팀장은 “확진 농장이 나와 ‘심각’ 단계가 되면 매일 출근인데, 그래도 지금은 주말에는 집에 갈 수 있다”며 미소지었다. 다만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동물병원을 15년간 운영했다. 당시에는 일요일이면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녹초가 된 몸으로 주말 내내 잠자기 바쁘다고 한다. ASF 확진 농장이 나오면 이 시간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사람이 없다 보니 생긴 일이다. 서울시의 약 1.5배 면적인 포천시에는 1074곳의 축산농가가 있다. 경기도 북부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ASF의 위협 대상인 사육돼지 농장만 해도 157곳으로 이날 기준 29만4957마리를 키운다. 지난해 ASF 때문에 살처분한 돼지의 3분의 2 정도 되는 규모다. 900여명의 포천시 공무원 중 수의사 자격증을 지닌 사람은 조 팀장이 유일하다. ‘철밥통’이라는 공무원인데도 하도 일이 많아 수의사 출신을 못 구한다. 조 팀장은 “선임 팀장이 2016~2017년 AI 발생 때 과로로 돌아가셨고 이후 4년째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다. 저도 11년 남았는데, 앞으로도 혼자 하지 않을까 싶다”고 한숨을 쉬었다.
드넓은 포천의 소독을 담당하는 인력은 3명이다. 덜컹대는 방역 차량 3대를 각각 몰고 다닌다. 하루에 9시간을 차에서 보낸다. 차 안에서 리모컨으로 원격 조종해 소독약을 뿌릴 수 있어 차에서 내릴 일이 없다. 사회와의 접점은 88곳에 설치된 방역초소 근무자와의 눈인사, 그리고 라디오다. 가끔은 민원도 접점이 된다. 3년째 방역 차량을 몰고 있는 이규직 포천축협 과장보는 “축사 진입로부터 소독약을 뿌리다 보면 밭농사 짓는 분들이 약 뿌린다고 뭐라고 하신다”고 전했다.
오른발의 고통은 이 업무의 필수 요소다. 방역 차량은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해서 수동 기어인 4륜 구동밖에 없다. 소독약을 뿌릴 때는 10~20㎞로 저속 운전을 하다 보니 고통을 수반하는 발재간이 필요하다. 이 과장보는 “차체가 높아 운전을 마치고 차에서 내릴 때면 매번 다리가 시큰하다”고 전했다.
야생 멧돼지 포획 현장도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지역주민들로 꾸려진 ‘ASF 방역수비대’는 자연과 사투를 벌인다. 현장에 동행한 폐사체 수색 관리자 김준현씨는 ‘벌’ 얘기가 나오자 질색했다. 그는 “수풀이 우거진 산속에서 벌집을 건드렸는데 ‘아, 이러다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숨도 안 쉬고 뛰었다”며 “한 번은 다른 곳에서 수색하던 동료한테 무전이 왔는데 아무 말이 없어 현장에 가보니 벌에 쏘여 혀가 마비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야생 멧돼지와 처음 맞닥뜨린 순간도 잊지 못한다. 김씨는 “야생 멧돼지와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가만히 있으니까 공격하지 않고 도망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폐사체를 찾는 과정도 고역이다. 김씨는 “봄·여름에는 야생 멧돼지 폐사체가 수풀 등으로 덮여 있어 냄새로 수색을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개코남’(개코 같은 남자)으로 통한다.
흔히 알려지지 않은 정보도 축적되기 시작했다. 야생 멧돼지 포획 틀 현장에서 만난 관리자 황만수씨는 ASF 확진 판정이 나온 폐사체를 처음 발견한 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산에서 폐사체를 찾았는데 복부 쪽에 옅은 보라색 반점이 퍼져 있었다”며 “피부 조직과 족(足)을 떼어내 검사했는데 역시나 양성이었다”고 말했다. 감염된 야생 멧돼지는 대부분 동일한 특성이 발현한다는 경험도 전했다.
폐사체를 발견해 ASF 양성 여부를 확인했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야생 멧돼지와의 접점을 없애야 ASF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길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산자락에서 멧돼지가 싫어하는 기피제가 눈에 띄었다. 울타리를 쳐놓은 이 땅 밑에는 폐사체가 묻혀 있었다. 사람이 감당해야 할 작업들이다.
당장 ASF가 발생하지 않는데도 축산 현장과 산에서 ‘소리 없는 사투’를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농장에서 확진 사례가 나오거나 감염된 야생 멧돼지가 남하할 경우 추가 확산 우려는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때문에 관계자들은 이곳 포천시가 최종 방위선이라고 본다. 조 팀장은 “남부 지역은 현재까지 청정한 만큼 ASF 방비가 부족하다. 여기가 뚫리면 전국에 다 퍼진다는 각오로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K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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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글·사진 신준섭 최재필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