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출판사 수는 몇 개나 될까? 곧 출간될 ‘2020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1세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1만6059개사였으나 2009년 말에는 3만5191개사로 늘어났다. 다시 10년이 지난 뒤인 2019년 말에는 7만416개사가 됐다. 연평균 3523개사의 출판사가 새로 태어났다. 이 통계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의 출판은 엄청난 호황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2019년에 신간을 한 종이라도 펴낸 출판사 수는 5250개사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으로 기간을 넓혀보아도 9344개사다. 실제로 책을 한 종이라도 생산한 실적이 있는 출판사는 약 13.2%에 불과했다. 수많은 출판사가 새로 생겨났지만 신간도 펴내지 못했으니 사실상 사망한 출판사나 다름없다. 이렇게 출판사는 출생률도 높고 유아사망률도 매우 높다.
신생 출판사는 대체로 1인 출판사다. 1인 출판이 가능해진 이유로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 아웃소싱 시스템의 도입, 유통의 집중 등이 주로 거론된다. 미국의 편집자였던 제이슨 엡스타인은 2001년 펴낸 ‘북 비즈니스’에서 미래의 책은 “대규모 출판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 또는 출판인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에 의해 만들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출판의 새로운 황금기의 입구”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아웃소싱 시스템이 도입됨에 따라 기획과 같은 매우 핵심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편집, 제작, 유통 등 모든 일을 외부의 힘에 맡길 수 있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매출 집중도가 매우 높아져 관리가 쉬워졌고, 아이디어만 좋으면 크라우드 펀딩으로 얼마든지 출판자금을 끌어모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1인 크리에이터의 시대가 아닌가!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만들어 직접 홍보마저 할 수 있으니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고 나서는 직접 만나지 않고도 모든 일이 가능해졌다. 화상회의나 클라우드를 이용한 공동 집필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리눅스, 위키피디아, 유튜브 등을 활용한 집단지성으로 엄청난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모을 수도 있다. 그러니 1인 출판의 구조와 집단지성을 잘 이용하면 한 권의 책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도 있다.
재야학자인 박세길은 ‘대전환기 프레임 혁명’(북바이북)에서 촛불시민혁명과 코로나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은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국면 전환에 의미 있게 기여할 위상을 확보해가고 있다. 축적된 잠재력을 폭발시켜야 할 시기가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소위 선진국들이 코로나19에 직면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지금 그는 “새로운 형태의 평화적이고 아름다운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집단지성에 기반한 비전 창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 형성, 개방적 소통 네트워크 구축 등 세 과제가 하나의 흐름 속에서 통합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분명 기회다. 코로나 전쟁을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하겠다는 자신감으로 새로운 세상을 앞장서서 열어갈 수 있다. 출판계도 지금의 대전환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존에 답습하던 방식의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집단지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한 사회에서 모든 사람의 생각이 일치할 수는 없다. 다양한 생각이 공존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 기존 세대와 신세대가 갈가리 찢어져 사사건건 대립해서는 곤란하다. 우리 출판계가 앞장서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책을 다양하게 출판한다면 분명 한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