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최 사장의 후회

입력 2020-07-15 04:02

최 사장은 최근 사무실을 줄이고 살던 집을 처분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 투자를 무리하게 해서 손해를 보았고,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사기도 당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외부의 악조건들이 소위 ‘잘나가던’ 최 사장 사업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 이유가 외부가 아니라 자기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일이 너무 잘 풀려나가는 바람에 조심하지 않게 됐다고, 그게 복이 아니라 화였다고 그는 말했다. 우연한 성취를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고 오만방자했노라고 말할 때 그는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뒤늦은 깨달음에 의하면, 우리의 크거나 작은 성취는 수없이 많은 변수들의 눈에 띄지 않는 합종연횡 결과이다. 관여하고 있는 조건들이 제대로 들어맞을 때 일정한 성취가 일어난다. 한 가지 요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사람과 야외 소풍을 나왔는데 비가 퍼부어 종일 차 안에만 있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날씨는 좋은데 길이 꽉 막혀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이뤄내는 크고 작은 성취에는 언제나 이런 영역이 존재한다.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영역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 사람은 오만해지고 긴장하지 않게 된다. 최 사장은 사업 초반의 우연한 성취에 취해 분수 모르고 날뛰었다고, 신중하게 좌고우면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러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이 절제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놓친다. 술에 취해서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의 문제는 술이 아니라 절제 없음이다. 술에 취하면 자제력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자제력이 없어서 술에 취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자제하지 않으려고, 자제하지 않을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경우도 없지 않다. 술이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기 위해 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권력은 술과 같아서 크든 작든,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가지면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든다.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무절제가 문제다.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이 쥔 작은 권력은 적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만, 큰 권력은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술을 마셔서 절제력이 없어진 사람보다 절제하지 않으려고 술을 마신 사람이 더 위험한 것처럼, 권력을 가져서 자기도 모르게 절제력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이런 사람도 물론 위험하지만) 절제하지 않을 조건을 확보할 요량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이 훨씬 더 위험하다.

그 권력이 아주 많은 변수들의 눈에 띄지 않는 합종연횡 결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 우연이나 행운의 요소를 부정하고 그저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것인 양 우쭐댈 때 이 사람이 조만간 맞게 될 파국은, 내가 아는 최 사장의 한탄으로 미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사람이 파국을 맞기 전에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불행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이 가진 권력이 크면 큰 만큼 사람들이 경험하게 될 불안과 불행도 커질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버드박스(BIRD BOX)’는 어느 날 문득 하늘에 나타난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보는 순간 죽게 되는 상황으로 시작하는 재난영화다. 흥미로운 것은 그 미지의 실체를 본 사람은 누구든 갑자기 황홀경에 빠져 자신을 스스로 해친다는 설정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보고 죽는다. 처음부터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이 이 재난 상황에서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여러모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유사하면서 대조적이다. 그의 소설이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재앙으로 설정한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보는 것을 재앙이라고 말한다.

짧은 순간의 황홀경. 그리고 죽음. 나는 사람의 혼을 빼앗아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가게 하는 그 미지의, 눈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의 이름이 절제할 줄 모르는 권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