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측 “실체 밝혀라”… 경찰은 난감

입력 2020-07-14 04:03
사진=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피해자 측은 국가가 나서서 진상을 규명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되레 피해자에게 묻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건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피해자의 진정한 피해 회복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수사 자체가 어려워진 터라 경찰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단을 꾸린 뒤 경찰이 조사를 지원하는 형태의 대안도 제기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13일 기자회견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진상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는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 만연한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피해자 인권회복의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측은 경찰이 박 전 시장이 사망하기 전까지 진행한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지난 8일 고소장 접수와 동시에 고소인 조사를 받았고, 피해사실에 대한 여러 증거들을 이미 제출한 만큼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경찰은 난감한 표정이다. 피고소인 조사 전에 박 전 시장이 사망했고, 피해자 일방의 주장과 증거만 남은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여러 대안을 두고 고민 중”이라며 “다만 피고소인의 진술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수사나 진상규명 조사를 진행하는 것에 어떤 실익이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칫 경찰이 피해자의 주장만으로 성급히 결론을 냈다가 유족 등 박 전 시장 측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이 아닌 서울시에서 진상조사단을 꾸리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고 상임대표는 “서울시는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던 직장”이라며 “규정에 따라 서울시는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찰 역시 조사단이 꾸려지면 지원·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진상조사단 구성은 논의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현수 오주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