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원순 성추행 의혹 진상 밝혀야 한다

입력 2020-07-14 04:01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13일 영결식을 거쳐 화장된 후 고향인 경남 창녕 선영에 묻혔다.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3선 서울시장으로서 남긴 박 전 시장의 커다란 족적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안타까움과 곤혹스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를 추모하고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하지만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고인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예우를 갖춰 추모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지금은 추모하고 애도할 시간이라는 주장도 존중돼야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그것대로 충분히 존중돼야 마땅하다.

박 전 시장이 영면에 들었으니 이제는 그의 허물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전직 비서 성추행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다.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 측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박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4년간 지속됐고 근무지를 옮긴 뒤에도 이어졌다’고 밝혔다.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박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 실수로 받아들여라’며 외면했다고 한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권력과 위력에 의한 직장 내 성추행의 전형인 셈이다.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사법적으로는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내려지겠지만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성범죄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 온 고인의 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피해서는 안 된다. 고소 사실과 수사 상황이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됐다는 의혹도 엄중한 사안이다. 수사 상황을 유출했거나 사건을 무마한 사실이 드러나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직장 내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하는 본보기로 삼을 수 있고, 피해자가 명예를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가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여권에서 “피해를 기정사실화하고 박 시장이 가해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자(死者) 명예훼손”이라고 하지만 무책임한 태도다. 고소인이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진상 규명을 원하고 있는 만큼 적극 협조해야 한다. ‘내 편’에도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 고인이 생전에 이루고자 노력했던 여성 인권 신장의 길로 우리 사회가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박 전 시장 사망의 책임을 고소인에게 돌리거나 신상을 털고 상처를 주는 2차 가해는 당장 멈춰야 한다. 이번 사태는 결코 고소인의 잘못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다. 박 전 시장이 자초한 것으로, 그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