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3) 공고 졸업 후 취업… 비전 없는 직장생활에 회의감

입력 2020-07-15 00:05
석창우 화백이 1982년 신혼여행지였던 전남 여수의 바닷가에서 아내 몰래 챙겨간 낚시도구로 낚시를 하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 아버지께선 취업이 쉬운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전기과였다. 전기과를 택한 것은 기름때 묻혀가며 일하는 기계과보단 좀 더 깨끗할 것이란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전기 관련 자격증만 딴 뒤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와 방향성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데다가 고졸 출신이 가진 한계로 난 점점 직장생활에 흥미가 떨어져만 갔다. 덩달아 직업 만족도도 낮아졌다. 그래서 대학에 가기로 하고 1년간 대학 예비고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1년 더 재수할까도 생각했지만, 국립 경기공업전문대학 전기과 입학을 선택했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빌딩의 변전실에 근무했다. 2년제인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명지대 전기공학과에 편입했다. 이후 입대를 위해 휴학하고 육군 만기 전역 후에 다시 복학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1982년 당시 구로3공단 내에서 의류 수출입을 하던 한 무역회사로 이직했다. 회사 내 공장 변전실에서 책임자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해 11월엔 이전 직장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녹록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이듬해인 1983년엔 첫째 딸까지 품에 안으며 평범하고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출근할 때면 두 살 된 딸이 따라 나와 자기도 아빠 따라간다고 해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주고 집으로 돌려보낸 즐거운 기억도 있다.

당시엔 직장 생활이 잘 맞지 않아 무료하게만 흘러가는 일상이었다. 우연히 낚시를 취미로 삼게 돼 직장 생활의 무료함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매주 토요일이면 밤낚시를 즐겨 다녔다. 태풍이 온다는데도 낚시를 가서 강풍과 비로 밤새 고생했을 정도로 낚시에 미쳤다. 신혼여행 갈 때 가방을 싸며 낚싯대를 몰래 넣은 적도 있다. 결국, 아내에게 들켰다. 아내는 낚싯대를 빼지 않으면 신혼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빼 두었다가 새벽에 몰래 다시 신혼여행 가방 밑에 숨겨 놔 신혼여행지에서도 낚시한 기억이 있다. 하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낚시하다가 문득 삶에 변화를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산업안전과 관련된 분야가 전망이 있는 것 같아 해당 분야 대학원에 가서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특별하거나 구체적인 꿈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더 나은 곳에 취업하고자 선택한 삶이었다. 대학원 원서를 구해 놓고 준비하던 중 회사에서 전기 설비 점검을 하던 난 2만2900V에 고압 전류에 감전사고를 당했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