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정치권에서도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며 여야 공방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빈소에 조문을 가는 것 자체가 어떤 정치적 메시지로 비칠지, 서울특별시장(葬)이 적절한지 등 여야는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고인에 대한 과도한 추모 분위기를 부추기거나 성추행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를 도외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미래통합당은 12일 피해자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당은 당 차원에서 박 시장 조문을 하지 않았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해찬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의 발언, 서울특별시장 5일 장례까지 모두 고인과의 관계에만 몰두해서 나온 현상”이라며 “피해자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대적인 서울특별시장(葬)은 피해자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가해”라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0일 장례식장에서 ‘고인 의혹에 당 차원의 대응을 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예의라고 하느냐. XX자식”이라고 했다가 추후 대변인을 통해 사과했다.
국회 여성 근로자들이 만든 페미니스트단체 국회페미는 민주당 서울시당이 제작해 서울 곳곳에 내건 박 시장 추모 현수막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를 당장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국회페미는 “피해자를 모욕하고 고통 주는 명백한 2차 가해”라며 “당의 정치적 이해가 반영된 메시지를 내걸어 박 시장 성폭력 피소 사실을 부정하고, 시민들에게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성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박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 선 우리 사회의 일면에 분노한다”고 했고,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왜곡, 2차 가해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침묵했다. 성범죄 피해여성 지원단체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출신인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그저 눈물뿐. 박 시장님, 내 선배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한정애 보건복지위원장도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 가끔은 말, 글을 줄이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 젠더폭력근절대책TF 단장을 지낸 남인순 최고위원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 추모에 전념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장례는 장례대로 치르고 애도의 시간을 가진 후 고소인의 목소리를 어떤 편견이나 사심 없이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나 “인간이 비슷한데 너무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면 다 사고가 나는 것”이라고 해 적절치 않은 언급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여야는 다만 고소인 2차 가해가 확산해선 안 된다는 데에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안팎에서 박 시장 추모에만 몰두한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자 한발 늦게 2차 가해 우려를 언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박 시장 아들 박주신씨의 병역 의혹이 다시 불거지며 여야 간 감정싸움이 일기도 했다. 배현진 통합당 원내대변인이 페이스북에 “장례 뒤 미뤄둔 숙제를 풀어야 한다. 당당하게 재검받고 2심 재판에 출석해 의혹을 깨끗하게 결론 내달라”고 적자 민주당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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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정 이가현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