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기침체가 길어지자 은행들이 슬금슬금 ‘우산’을 접고 있다. 주로 상반기에 큰 타격을 받은 식당과 숙박업소 등 코로나19 위기업종을 겨냥해 대출을 조이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은 업종별 대출 한도 조정으로 이어지는 올해 정기 산업등급평가를 지난 8일 시작했다. 업황과 정책 변화 등을 토대로 산업별 등급을 매겨 향후 대출에 반영하는 만큼 최근 경영 여건이 나빠진 업종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번 평가에서는 코로나19 영향을 크게 받은 업종을 중심으로 등급을 낮출 가능성이 높다. 국민은행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나타난 대면 서비스 시장 위축 등을 평가에 반영할 방침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급감한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종 등이 주요 강등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은 장기연체 가능성을 미리 감지하는 조기경보시스템을 활용해 개별 채무자 관리 강도도 높인다. ‘잠재 관리’ ‘주의 관리’ 등으로 판정되면 대출 연장 때 원금 일부를 갚도록 하는 식이다.
하나은행 역시 고위험 개인 차주와 위험업종을 골라 대출 문턱을 높였다. 위험 차주는 담보를 보강하도록 하고 위험 업종에 대해서는 신규 대출 심사를 강화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말 요식업종 대출을 건당 1억원 이하로 제한하라는 공문을 모든 지점에 하달했다. 올 들어 대출이 크게 늘자 한도 축소로 부실 위험 낮추기에 나선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상이 줄어 임대료와 인건비, 대출이자 부담이 커진 식당 운영자들로서는 비상시에 오히려 돈줄이 막히게 된 셈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월급쟁이가 기댈 우산도 좁아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말 직장인 대상 비대면 신용대출인 ‘우리 WON하는 직장인 대출’의 연소득 인정 비율을 낮추는 식으로 대출한도를 조정했다. 지난 3월 중순 출시한 지 약 3개월 만에 대출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신한은행은 고신용 개인고객과 우량업체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일부 신용대출의 소득 대비 한도를 낮췄다. 씨티은행은 직장인 신용대출 대상을 자체 신용등급 기준 A~D등급에서 A~B등급까지로 높였다.
이런 조치들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만 하더라도 “이번에는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않겠다”던 은행들이 비가 끊임없이 내리자 결국 우산을 물리는 모양새로 비친다. 올해 3월 초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장들에게 당부한 ‘소나기가 쏟아질 때 튼튼한 우산, 피할 곳을 제공해 주는 든든한 은행’의 모습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