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부동산과 주식, 금 등 다양한 자산의 가격은 오르는 현상이 넉 달가량 이어지고 있다. “오르지 않는 건 내 월급뿐”이라는 한탄만 나온다. 요인으로 지목되는 건 바로 ‘유동성’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에 자금을 풀었지만 급증한 통화량이 산업 생산·소비보다 자산 시장으로 대거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유동성 확대가 자산 가치 급등으로 이어진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라고 지적한다.
올 초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글로벌 유동성 장세에 불을 지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광의통화량(M2)은 3018조6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넘어섰다. M2보다 더 현금 추세에 가까운 협의통화(M1)의 경우도 같은 달 1012조3000억원으로 처음 1000조원대에 진입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 및 금융권의 대출 확대 방침이 맞물린 결과다. 국내 가계에 직접적으로 뿌려진 14조원 규모의 ‘긴급재난지원금’도 약 99% 지급됐다.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의 통화량 확대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M1 증가율은 전년 대비 약 30%, M2 역시 20%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코로나19 대책으로 2조3000억 달러(약 2745조원)의 ‘바주카포’ 부양책을 발표한 바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총 1조3500억 유로(약 1830조원)의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으로 경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통화량이 늘어났는데 정작 물가는 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이른바 ‘돈맥(脈)경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을 총통화(M2 평잔)로 나눠 산출한 통화유통속도는 0.68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0.78~0.85)보다 더 낮은 수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개인이 소비를 하지 않고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아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라며 “코로나 부양책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늘어난 통화량이 물가를 밀어올리기까진 시차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 4월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하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공포를 확산시켰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최근 배럴당 40달러 선을 회복한 상태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물가 상승의 구조적 제약 요인이 있지만 내년까지 정책 노력의 일환으로 물가는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금융시장 일각에선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자산 가격만 과도하게 오르는 버블(거품) 현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미 연준의 스트레스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에선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최대 7000억 달러(약 840조원)의 대출이 부실화하고, 주요 은행 가운데 4분의 1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로 풀린 돈이 훗날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2차 확산세가 뚜렷해지면서 ‘유동성 파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스탠스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추가 매수 여력이 45조원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 이제라도 집을 사려는 30대가 뛰어들며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포에 의한 구매) 현상이 벌어지는 게 일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자산 가치 상승 현상은 유동성과 투자자들의 심리라는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유동성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면 투자 심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