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2) 과제 때문에 참석한 교회… 하나님 존재 처음 알게 돼

입력 2020-07-14 00:05
석창우 화백이 고교시절 교회를 같이 다닌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었다. 맨 왼쪽 김인서군은 장로가 됐고 가운데 있는 윤주남군은 목사가 됐다.

내가 하나님이란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건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1971년 서울 영등포공고에 진학했다. 기독교 가치관으로 설립된 ‘미션스쿨’이었다. 하지만 고교 재학 시절 내게 교회는 그저 여러 종교기관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당시엔 학교 수업 과목 중 하나로 ‘종교’ 시간이 있었다. 하루는 성경을 가르치던 목사님이 집 근처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한 뒤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예배 참석 확인 도장을 받아오면 점수를 잘 주겠노라고 선포하셨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김인서 윤주남과 함께 신도림동 근처의 한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보기로 했다. 오원식 목사님이 담임으로 계셨던 새서울교회로 기억한다. 그렇게 난 그저 과제 점수를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교회를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또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아니었을까 한다. 막연하게 그리고 조금은 불순한 의도로 찾았던 그 교회에서 우리 셋 모두 성가대까지 하게 됐으니 말이다.

학교에서 예배를 드릴 때였다. 한 찬송가가 내 마음을 울렸다. 박정보란 친구가 예배 전 찬양을 인도했는데 그는 찬양 인도를 할 때면 찬송가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를 매번 부르곤 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란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렇게 어렴풋하게나마 우리 짐을 대신 짊어주시고, 우릴 위로해주시는 주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후에 주와 동행하라는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게 된 계기가 됐다.

시간이 지나 같이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시작한 우리 셋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주남이는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 사업을 하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현재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던 그의 어머니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로가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세상에 나가 맘껏 꿈을 펼쳐 보이고 싶었던 난 자연스레 교회와 거리가 멀어졌다. 감전사고 직후에는 병원을 찾은 지인을 따라 한동안 성당에 다니기도 했다. 하나님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신앙생활을 근근이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의 계획하심 아래 이미 날 선택하셨던 하나님은 항상 내 손을 잡고 계셨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등학교 시절 처음 당신을 알게 하신 예수님은 이미 날 당신이 계획하신 프로그램 속에 찍어두셨고, 사고를 통해 날 다시 활용하신 것 같다”고 종종 말한다.

사고 후 10년이 지나서야 기도하던 내게 예수님께선 몸소 찾아와 이를 알게 하셨으니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