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대부 박원순 “모든 분께 죄송”… 아쉬움 남기고 떠났다

입력 2020-07-11 04:02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오전 모자와 점퍼를 착용하고, 배낭을 멘 채 서울 종로구 가회동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시민운동을 대표했던 큰 별이 스러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박 시장은 나눔과 기부 문화를 확산시킨 시민운동가로 명성을 떨친 후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에 올랐고, 차기 대권을 바라봤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논란에는 물음표가 달렸지만, 추모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10일 공개한 박원순 시장의 자필 유언장. 박 시장은 유언장을 시장 공관 서재 책상에 올려놓았다. 서울시 제공

박 시장은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유서는 박 시장이 전날 오전 10시44분쯤 서울시장 공관을 나오기 직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됐다. 박 시장 측은 “공관을 정리하던 주무관이 책상 위에 놓인 유언장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소셜 디자이너’를 자처했던 박 시장은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 활동했으며 94년 시민단체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다.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등을 주도했다.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며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 3선 서울시장 고지를 밟으며 차기 대권 후보로 주목받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시장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우리 사회에 불모지였던 시민운동을 일궈내고 시 행정을 맡아 10년 동안 잘 이끌어왔는데 이렇게 황망하게 떠났다”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박 시장의 유고는 2022년 3월 대선과 내년 4월 재·보궐 선거 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경찰은 박 시장 사인을 조사 중이다. 타살 정황을 확인하지는 못했으며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박 시장은 전날 오후 5시17분쯤 실종신고가 접수됐고 이튿날인 10일 오전 0시1분쯤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전 서울시장 비서가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사건은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박 시장의 유족 측은 “사실과 무관하게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가 거듭될 경우 법적으로 엄중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간 치러진다. 발인은 13일이다. 서울시는 11일 오전부터 일반 시민이 조문할 수 있도록 서울시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키로 했다. 시정은 내년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까지 서정협 행정1부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신재희 기자, 김재중 선임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