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나라 독일, 정부 주도로 유리천장 부순다

입력 2020-07-10 04:04
지난 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의회 총회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독일이 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국가 전략을 채택했다. 남녀 임금격차 해소, 정부기관 및 기업에서 여성 관리자 비율 확대 등이 골자다.

독일 일간 도이체벨레와 로이터통신 등은 8일(현지시간) 독일 정부가 역사상 처음으로 성평등 촉진을 위한 국가 전략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성평등 촉진 전략은 9개 부문으로 나뉘어 시행된다. 일과 삶의 균형,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 해결, 공직을 비롯한 관리직에서의 여성 수 확대 등이다. 이번 전략에는 정부의 모든 부처와 산업계가 설정한 성평등 관련 목표가 담겼다. 전날 독일 의회는 성평등 전략을 현장에 적용하는 일을 전담할 기구를 설립하는 데 합의했다.

프란치스카 기파이 가족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평등 촉진 전략은 모든 부처를 거쳐 조율되고 합의된 독일 역사상 첫 번째 평등 전략이며 ‘이정표’”라면서 “이런 방식으로 시행돼야만 성평등 문제가 단순히 여성부의 일이 아니라 모든 부처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기파이 장관은 “현재 독일 의회에서 여성 의원 비율은 최근 20년 중 가장 낮고, 지방 시장의 90%는 남성”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CDU)은 선거 입후보자를 정할 때나 당 내부 보직을 임명할 때 ‘여성 할당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어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가 여성 당대표로 선출됐지만 기독민주당의 여성 의원 비율은 26%에 불과하다. 주요 보직자 중 여성 비율은 6%에 그친다.

기업에서 여성 고위직 비율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된다. 독일 정부는 여성 임원 비율이 30%에 도달하는 기업체 수를 기존 105곳에서 600곳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성평등 촉진 전략은 여성 총리가 오래 집권하는데도 불구하고 성평등 문제에 있어 독일이 유럽 평균에 못 미친다는 불명예를 털어버리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유럽성평등연구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독일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20% 적게 벌고,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도 15% 수준이다.

현지 언론 더로컬은 “역사적으로 성평등 문제는 독일의 과제였다”면서 “서독에선 1977년까지 여성이 배우자의 허락 없이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다”고 전했다.

재계 여성임원단체인 독일 여성감독위원회(FidAR) 모니카 슐츠-슈트렐로브 의장은 “이 전략은 돌파구”라면서 “연방정부가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고 상황을 모니터링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슐츠-스트렐로브 의장은 “불행하게도 제재와 압력 없이는 독일에서 (성평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독일 주요 대기업 30곳 중 현재 여성이 대표를 맡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기파이 장관은 “많은 기업이 ‘여긴 기술기업이고, 적합한 여성 인력이 없다’고 말한다”면서 “그럴 때 나는 ‘자격을 갖춘 여성은 고등학교에도, 대학교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라고 되묻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능력이 없는 사람을 리더 자리에 앉히라는 게 아니다”며 “경쟁력 있는 직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긴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