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프의 개’ 된 세계 증시… 경기 부양 작은 신호에도 ‘하이킥’

입력 2020-07-10 04:01

국내외 증시는 최근 불확실한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이어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나스닥지수는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300만명 돌파에 따른 경제 재봉쇄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치를 신고했다.

주식시장 참가자들이 V자형 경제회복 등 낙관론에 빠져 있다거나 저금리 상황으로 빠져들수록 주식 매력도가 높아진다는 등의 분석만으로는 납득이 어려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알리안츠와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최근 의미 있는 진단을 내려 주목을 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주식시장 VS 경제가 정책 당국에 끼치는 함의’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준의장이 시장에 심어 놓은 ‘그린스펀 풋’ 현상으로 설명한다. 중앙은행이 주가가 떨어지는 걸 그만둘 리 없다는 시장의 믿음이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가 상승을 업적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의 정책 당국 압박도 한몫한다고 지적한다.

알리안츠연구소가 내놓은 ‘주가와 실물 경제 괴리의 4가지 이유 보고서’는 더 구체적으로 중앙은행의 유동성 확대 정책에 증시가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파블로프 시장’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한다.

파블로프 실험에서 음식을 줄 때마다 종을 치면 개가 침을 흘리는 것처럼 중앙은행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작은 신호만 보내도 증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파블로프 시장에서는 로빈후드 등 무료주식거래 앱을 통해 시장에 새로 대거 진입한 미국판 동학개미 ‘로빈후드 투자자’들이 단순투자자가 아닌 ‘주요 세력’으로 등장해 중앙은행과 호흡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 앱의 이용자 수는 지난 5월 기준 1300만명이다.

과거 같으면 ‘개미 입성=증시 급락’ 신호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들은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는 중앙은행을 믿고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증시를 부축하는 한 축이 됐다. 오히려 3월 23일 대폭락 이후 기관투자가들은 회사채 등 신용시장 복원에 몰두하느라 주식시장에 주요 세력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게 알리안츠 보고서의 분석이다.

로빈후드를 통해 유입된 개미 투자자의 거래액 중 66%가 옵션 선물 등 파생상품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미 이들이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을 좌우하는 세력으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7월 들어 중국판 동학개미들의 가세도 심상찮다. 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본토에서 개인의 신규 계좌 개설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 증시의 일일 거래대금은 8일까지 3거래일 연속 1조5000억 위안(약 256조695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 6일 상하이종합지수가 5.71% 오르며 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도 중국 개미들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당국의 부양책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개인들의 투자행태는 거꾸로 당국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중 상당수가 펀더멘털에 무지하고 돈벌이에 뒤처질까 두려운 이른바 ‘포모(Fear of Missing Out)족’들로 게임하듯이 주식에 투자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성수 러브펀드 대표는 인베스팅닷컴 기고를 통해 “수익이 늘다보면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기 쉬어 더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다 큰 손실을 본 사례를 많이 봤다”며 주식 투자에서의 만용을 경계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조민아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