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지난달 19일 정치 유튜버 ‘왕자’가 운영하는 채널에 올라온 영상의 제목이다. 왕자가 5만원권 돈다발을 들고 찍은 사진이 ‘썸네일’(영상 목록에 뜨는 소개 이미지)에 노출됐다. 그는 영상에서 “누구를 돕겠다, 정의, 공정 이런 소리 하면서 돈을 받은 게 아니다. ‘그냥 차(집회용 차량)를 구입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보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거리 집회에 쓸 차량을 구매한다며 돈을 달라고 유튜브 구독자에게 요청했고 후원금이 모였다는 것이다.
정치 유튜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돈을 내고 메시지를 전송하는 ‘슈퍼챗(Superchat)’이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따로 있다. 현금이 곧바로 들어오는 ‘계좌 후원금’이다. 유튜버들은 광고나 슈퍼챗으로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먼저 10% 부가세를 떼야 한다. 거기에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 본사가 수수료 명목으로 30%를 가져간다. 슈퍼챗 수익 100만원이 발생해도 채널 운영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63만원 정도다.
계좌로 직접 현금 후원을 받으면 부가세와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정치 유튜브 채널의 열성 지지자들은 계좌이체 방식으로 현금을 보내자고 독려한다.
정치 유튜버가 후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건 보수든 진보든 성향과 관계 없다. 지난 2일 지켜본 ‘시사타파TV’ 채널도 라이브 방송 시작 전부터 정기회원 모집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ARS 정기회원 가입 전화번호, 은행 계좌번호가 안내됐다. 방송이 시작되고 출연진이 등장하자 화면 하단에 ‘개국본(개혁국민운동본부) 정기회원’이라는 문구와 계좌번호, ARS 번호가 안내됐다. 오른쪽 상단에는 ‘실시간 정기회원 수’가 표시됐다. 개혁국민운동본부는 지난해 서울 서초동에서 ‘친조국 집회’를 주도한 단체다. 개국본 대표이자 시사타파TV를 운영하는 이종원씨는 지난 1월 13일 방송에서 “지금 회비가 거의 안 들어온다. 한 달 동안 거의 안 들어오는데 회비를 좀 내 달라”고 말했다.
정치 유튜버를 제외한 국내 상위 유튜버들이 후원 계좌를 노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독자 854만명을 보유한 Jane ASMR 채널(10위), 메이크업을 주제로 하는 포니(18위) 영상에도 후원 문구는 없다. 구독자 수가 국내 4위(1380만명)인 ‘보람튜브 토이리뷰’는 아동용 콘텐츠를 다루고 있어 슈퍼챗이나 유료 멤버십도 제한된다.
정치 유튜버들이 다른 수입원을 찾으면서 내세우는 이유는 ‘노란딱지’다. 유튜브는 자체 운영 기준에 어긋나는 콘텐츠에 노란딱지를 붙이고 광고를 제한한다. 선정성, 폭력성, 혐오 조장, 정치적 편향성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영상에 노란딱지를 붙인다. 광고 수익이 제한된 유튜버는 이용자에게 도움을 호소한다. 이용자들은 영상에 노란딱지가 붙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없다.
노골적으로 후원금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정치 유튜브 채널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독자 4만7000명을 보유한 정치 유튜버 ‘꿀승훈’은 지난 2월 11일 해피나눔 월정액 후원을 독려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해피나눔은 매달 약정일에 실시간 계좌이체나 카드 자동결제, 휴대전화 소액결제 등을 통해 후원금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정기적으로 돈이 이체되므로 요일이나 주제에 따라 들쑥날쑥한 슈퍼챗 수입과 달리 안정적 수익을 올리는 게 가능하다. 그는 “채널이 터져버리면(운영이 정지되면) 내가 생활하는 데 변동이 심해져 버리고 예측하기 힘들어진다”며 “고정비, 생활비, 영상 업로드 예산을 위해 정기후원이 될 수 있는 해피나눔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구독료, 상품 판매… 다양한 수입원
정치 유튜버의 또 다른 수익원은 ‘채널 멤버십’이다.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구독자가 낸 월 구독료에 따라 멤버십 등급을 다르게 부여할 수 있다. 월 구독료도 유튜브와 7대 3으로 나눠 갖지만 매달 정액으로 결제가 이뤄지므로 안정적인 수입원이 된다.
정치 유튜버 윤서인씨가 운영하는 ‘윤튜브’ 채널은 지난해 12월부터 유료 멤버십을 운영했다. 윤씨는 “멤버십은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적선이 아니라 엄연히 구독자와 나의 당당한 거래”라며 “이제 노딱(노란딱지)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할 수 있게 되니까 이 구독 기능은 나한테 구세주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적게는 월 2990원부터 많게는 월 6만원을 내면 유료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윤씨는 “월 7990원 이상을 내는 회원의 모든 댓글에 내가 대댓글을 달 것”이라며 “가장 높은 ‘실친’(월 6만원을 내는 등급)에 가입하신 분들과는 카카오톡 메신저 채팅방도 따로 만들고 원한다면 정기적인 만남도 따로 갖겠다”고 말했다.
유료 멤버십을 결제하면 유튜브 이용자의 아이디 옆에 배지 아이콘이 붙는다. 금액대에 가입 기간에 따라 표시되는 배지 색깔이 다르므로 유튜버들은 높은 등급의 유료 회원이 남기는 채팅 메시지를 읽으며 감사 인사를 한다. 돈을 낸 회원만 채팅창에서 보낼 수 있는 이모티콘을 따로 정해두는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흉내내는 보수 유튜버 ‘도람뿌’의 경우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려진 이모티콘을 채팅에 쓸 수 있다고 홍보한다.
다수 구독자와 고정 팬이 생긴 정치 유튜버는 물품 판매를 한다.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홈페이지에서 가세연 로고와 태극기 등이 새겨진 우산과 팔찌, 에코백, 텀블러를 판매하고 있다. 가세연은 지난해 3월 통신판매업 사업자로 신고했다. 의류와 패션, 잡화, 미용 상품을 취급하는 업체로 소개돼 있다. 지난해 슈퍼챗 수익 3억8000만원을 기록한 GZSS TV도 홈페이지에서 의류와 육포, 홍삼절편 등을 판매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정치 유튜브 채널도 수익 활동을 한다. 구독자 78만명을 보유한 ‘딴지방송국’은 방송 중 ‘PPL’(제품을 화면에 노출하는 간접광고) 시간이 있다. 이 채널을 운영하는 김어준씨는 지난 3일 방송에서 톳으로 만든 과자를 소개하며 “이걸 과자로 만든 걸 보면 맛있나 본데?”라고 말했다. 3개 상품에 대한 영상이 유튜브 광고가 아닌 자체 영상으로 송출되고 여기에 김씨가 직접 홍보를 하는 방식이다. 구독자가 24만명인 ‘이동형tv’는 테이블 전면에 제품 광고판을 세워두고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다. 지난 1일 방송에서는 1시간13분 내내 보험 상품, 샴푸 등 7개 광고 이미지가 노출됐다. 이 중에는 상품 광고가 아닌 경기도의 ‘청년면접수당’ 광고도 있었다.
지난해 국내 슈퍼챗 수익 26위를 기록한 유튜브 채널 ‘이송원TV’는 지난 3일 ‘윤석열, 측근에 누구 좋아하라고 사표 내냐 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내보냈다. 이송원씨는 방송 시작 전 “홍보를 해야죠”라며 운을 떼고는 6분38초 동안 블루베리와 흑마늘 등 효능과 주문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저희 아버님 이거 한 달 드셨다”며 “걸음걸이가 빨라지셨고 이것 때문에 힘도 좋아지셨다. 많은 주문 바란다”고 말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블루베리, 흑마늘, 호두죽을 주문할 수 있는 연락처가 떠 있었다.
정치 유튜버 수입은 과세 사각지대
정치 유튜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얼마나 벌어들이는지는 본인들이 공개하지 않은 이상 정확히 알 수 없다. 개방된 채팅창에서 돈을 보내는 슈퍼챗만 집계가 가능하다. 가세연은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 직원 채용 공고를 냈는데 지난해 연 매출이 17억6131만원이라고 소개됐다. 나이스평가정보가 발행한 가세연의 기업보고서에도 매출액은 동일하다. 국민일보는 기업보고서에 적힌 매출액과 내역이 실제와 같은 수준인지 가세연에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수입이 있는 모든 유튜버는 종합소득세 신고 의무가 있다. 유튜브에서 받는 광고와 구독료, 슈퍼챗 수입을 신고해야 한다. 계좌 후원이나 PPL을 통해 받는 협찬 수익도 신고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영상 콘텐츠를 올려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는 모두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은 1인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서찬영 세무사는 “유튜버가 스스로를 비영리단체로 알고 후원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후원 역시 종합소득세로 과세한다”고 말했다.
다만 유튜버들이 스스로 소득을 신고하지 않으면 과세는 쉽지 않다. 정산받는 외환 금액이 건당 1000달러(약 120만원)를 넘거나 한 사람이 연간 1만 달러(약 1200만원) 이상 송금받는 경우 한국은행에서 국세청으로 통보된다. 하지만 세무사들에 따르면 구글로부터 돈을 받을 때 여러 계좌로 나눠 받거나 수입을 축소 신고하는 방식으로 과세를 피할 수 있다. 과세 당국이 유튜버의 개인 계좌를 일일이 들여다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정치 유튜버에 대한 과세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제 거래임을 이용해 누락시키거나 계좌 쪼개기 방식으로 하는 경우 중점을 두고 들여다보고 있다”며 “다만 전체를 다 보는 것은 아니고 혐의가 있는 거래의 경우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유튜브를 통해 받은 후원이나 구독료가 ‘기부금품법’의 적용 대상인지는 애매하다. 기부금품법은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이나 물품’을 기부금품으로 규정하고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집하려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도록 한다. 등록하지 않고 모금을 할 때는 반환 명령을 내리거나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기부금품법에는 ‘법인, 정당, 사회단체, 종친회, 친목단체 등이 소속원으로부터 가입금, 일시금, 회비 또는 그 구성원의 공동 이익을 위해 모은 금품’은 기부금품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후원받은 돈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진다.
이에 대해 국세청 측은 “사안마다 다를 수 있지만 후원금을 보내는 행위는 개인 간 ‘증여’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금액이 50만원을 넘지 않으면 과세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자발적 구독료’나 ‘광고 대가 협찬금’의 경우 사업소득이기 때문에 금액에 상관없이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정치 유튜버의 비즈니스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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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