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뒷담] 다주택 처분 명령… ‘늘공’은 울고 ‘어공’은 느긋

입력 2020-07-10 00:11

다주택 고위공직자에게 집을 팔라는 정세균 총리의 일갈이 관가에 묘한 지형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늘공’(늘 공무원)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나뉜다.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해온 늘공 다주택자는 인사 협박을 의식해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반면 여당과 밀접한 인연을 지닌 어공 다주택자는 “임기 끝나면 나갈 텐데 왜 파냐”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다보니 정 총리의 압박은 늘공만 독박을 쓰는 독배(毒杯)라는 뒷말이 나온다.

고위공직자인 A씨는 서울시와 경기도에 각각 1채의 집을 갖고 있다. 윗선 지시에 1채를 팔려고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고민이다. A씨는 8일 “어서 팔려야 짐을 내려놓는데 걱정이다”고 전했다. 또 다른 부처 고위공직자 B씨는 가족끼리 논의 중이라고 한다. 본인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배우자의 반대가 거세다며 한숨을 내뱉는다. 두 사람 모두 늘공이란 공통점이 있다. 향후 장차관으로 승진할 수도 있다는 기대에 고민의 끈을 내려놓지 못한다.

늘공과 달리 어공의 세계는 유연하다. 분양권까지 포함해 수도권에 5채의 집을 갖고 있는 C씨 측근은 “팔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C씨는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출신으로 임대사업자 등록까지 한 대표적인 다주택자다. 임기가 끝나면 물러날 텐데 굳이 지금 집을 팔 필요가 있느냐는 뜻으로 읽힌다. 현직 교수이면서 학교를 쉬고 고위공직자 세계에 입문한 D씨도 마찬가지다. 서울과 경기도에 한 채씩 집이 있다. 3년 임기가 끝나면 교수로 복직하면 된다.

대놓고 침묵을 지키는 어공도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나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각각 3채, 2채의 집을 보유한 다주택자다. 정 총리의 압박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늘공의 불만만 커진다. 경제부처 산하 기관장인 E씨는 2채를 보유한 다주택자로 분류된다. 세종시의 실거주 주택과 경남 합천에 시가 수백만원짜리 집이 재산으로 등록돼 있다. 외연만 보면 2주택자다. E씨는 “7남매가 부모에게 상속받은 빈집에 7분의 1 지분이 있다. 팔리지도 않는데 이걸 어쩌라는 얘긴지 모르겠다. 제발 누가 사갔으면 싶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