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빨래를 널다

입력 2020-07-09 19:38 수정 2020-07-10 11:55

황사 주의보를 안고 거실로 들어선다
문득 눈 끝이 머문 식탁
춘곤의 기지개로 손짓하는 아내의 필체
숨겨진 보물을 찾는 아이처럼 세탁기를 향한다
주인도 없는 사이
거친 숨을 몰아쉰 흔적이 하수구 거품으로 남았다
세탁기 속에는 아내와 딸
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그사이 내 팔 하나는 아내의 바지 속에
다리 하나는 아들의 태권도복과
딸아이의 블라우스 사이에 끼어있다
배시시 웃음이 묻어난다
서로가 묶고 있는 일상의 연결고리
그 관을 따라 끈적한 정이 흐를 것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또다시 넷이 되는 소박한 섭리
두 팔로 가족들을 안고 거실로 나온다
튼실한 줄기에 앙상한 가지로 뻗은 고목
그 나무에 자꾸 잎이 돋아난다
가지에 잎으로 걸터앉은 아내와 딸아이
금강권으로 한껏 폼을 잡은 태권 소년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내 무좀의 흔적도 자리를 잡는다

오늘도 익숙하게 가족의 일상을 넌다

안영선의 ‘춘몽은 더 독한 계절이다’ 중

시인은 아내가 쓴 ‘빨래를 널어 달라’는 메모를 봤다. 탈수가 된 세탁기 속 빨래는 서로 엉켜서 시인이 꺼내주길 기다리고 있다. 서로 엉킨 빨래는 매일 부딪치면서도 서로를 의지하는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일상의 짧은 단면을 통해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