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처럼… 묵묵히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가자

입력 2020-07-10 17:19
지난해 12월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열린 ‘부모님과 함께하는 홈커밍 데이’에서 참석자들이 무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1521년 4월 17일 오후 4시. 마르틴 루터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취임한 카를 5세 앞에 섰습니다. 두려움이라곤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루터가 신뢰한 것은 오직 성경의 권위와 진리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었습니다. 심문관의 취조가 시작됐습니다.

“이 책들은 모두 당신이 쓴 것인가.” “네, 그 외에도 더 있습니다.” “당신이 쓴 글 중에 취소할 부분이 있는가.” 한참 생각한 루터가 대답합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황제는 그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루터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대상은 속죄에 대한 잘못된 주장이었습니다. 루터는 구원이란 면죄부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루터는 다음 날 황제 앞에 섰습니다. “성경의 증거와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한,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취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소서. 아멘!”

마르틴 루터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진리라는 확신과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천만인이 넓은 길을 걸어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묵묵하게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 이들이 신앙인입니다.

온 세상에 물든 인류의 타락

인류의 첫 범죄 이후로 온 세상은 급속히 죄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노아 시대에 이르러 세상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창세기 6장의 첫 두 절이 잘 보여 줍니다.(6:1~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원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은 건전한 인류의 유지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가장 중요한 제도입니다. 결혼이란 외적인 모습에 끌려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공유하는 남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연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결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윤리가 땅에 떨어진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6:3)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인간의 죄악은 특정 부류나 정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하고 생각이나 계획이 항상 악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실망은 사람을 지은 것을 한탄하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인간은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됐습니다.

한 손에는 심판 한 손에는 자비

심판의 하나님은 또한 자비의 하나님이시기에, 120년이라는 회개할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120년이란 세월은 하나님의 인내가 얼마나 큰지 보여 줍니다. 당장이라도 심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고 삶을 되돌리기를 원하는 따스한 목자의 마음이 보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동일하게 살아갑니다.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주인이 돼 자아를 성취하는 것을 지고한 선으로 여기고, 자신이 인생의 최종 결정자가 되고 타인의 간섭을 거부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창조주를 버리고 자신이 신이 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이런 시대의 죄악을 뚫고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젠가 다가올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이 다 변질돼 갈 때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노아입니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 희망의 꽃을 발견하기 어려울 때, 하나님의 시선은 노아에게 집중됐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죽은 세상이 아니라 이런 세상을 살려낼 하나님의 사람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믿음에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흉내가 아닙니다. 잠시 동안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적인 열정도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묵묵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마른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묵묵히 못질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노아와 홍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게 합니다. 노아의 혈통을 따라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납니다. 온 세상이 죄악으로 물결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노아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보존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노아가 가족을 방주로 인도한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의 방주로 인도하실 분입니다.

류응렬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