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를 유엔에 공식 통보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이 7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미국 내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WHO에 재가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탈퇴로 WHO의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능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주장을 펴온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책임론’을 인정하지 않는 WHO를 “중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해 왔다. 특히 “미국은 WHO에 1년에 4억5000만 달러를 내는데 중국은 4000만 달러밖에 내지 않는다”면서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WHO를 압박해 왔다.
미국의 탈퇴 통보는 이날부로 즉시 효력을 발휘하며 접수일로부터 1년 후인 오는 2021년 7월 6일 탈퇴가 최종 확정된다. 그러나 미국이 실제로 탈퇴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가능성이 작다고 여겨졌던 미국의 WHO 탈퇴가 현실화되자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과 행정부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라마 알렉산더 공화당 상원 의원은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코로나19와 관련한 WHO 실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만, 그 시기는 대유행 와중이 아닌 위기가 끝난 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릭 스왈웰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무책임하고도 무모하며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맹비난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11월 대선에서 맞붙는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통령으로서 첫날, 나는 WHO에 재가입하고 세계무대에서 우리의 지도력을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WHO를 탈퇴하기 위해 치러야 할 잔금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WP는 미국이 밀려 있는 회비와 경상비 등 2억 달러가량의 지불을 완료해야 기구에서 최종 탈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의회 동의를 받아야 하기에 실질적으로 동의 없이는 WHO 탈퇴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미 보건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미국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내려진 이번 결정이 WHO의 약화와 미국의 손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공중보건 전문가들 및 관계자들은 미국의 탈퇴는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질병과 죽음의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한다”며 “심지어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WHO 탈퇴 결정을 책임 전가용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유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