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뽐냈는데… 기약 없는 경기 관람

입력 2020-07-10 04:04
한국 프로스포츠는 포스트 코로나로 진입할 준비에 들어갔지만, 그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포스트 코로나의 ‘마지막 단추’가 될 관중석 개방은 일부 지역의 감염병 재확산세와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계기로 드러난 체육계 악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열흘 넘게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종목별 주관 단체와 각 구단, 경기장 주변 지역사회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야구기구(NPB)는 10일 오후 6시가 되면 전국 야구장 6곳에 관객을 들이고 경기를 시작한다. 한국보다 개막에서 늦었지만 관중석 개방에서 앞섰다. 범사회적인 노력과 체계적인 방역으로 주요 프로리그를 모두 시작해 세계적으로 선진 사례를 제시한 한국 프로스포츠는 언제 ‘마지막 단추’를 꿸 수 있을까.

시행 직전에 중단된 관중 유치 논의

한국프로야구는 지난 5월 5일에 개막해 2개월을 넘게 무관중 생중계로 정규리그를 진행하고 있지만, 관객을 경기장으로 들이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초 지난달 28일에 프로스포츠의 관중 입장을 허용했지만 광주 등 일부 지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재확산에 따라 그 시기와 규모를 열흘 넘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무관중으로 연습경기를 펼친 지난 4월 21일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 전경에 두 손으로 ‘엑스(X)’를 그린 여성을 합성한 이미지. 국민일보DB, 게티이미지

지난 4일 오후 6시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양덕동 운동장사거리.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홈구장인 창원 NC파크와 백화점·마트·아파트·상점을 사방으로 둘러싼 이곳은 경남 최대 도심을 조성한 창원에서도 많은 인파를 들이는 거리 중 하나다. 지난해 여름만 해도 야구장 관객의 함성으로 뒤덮였던 이 거리는 일부 가족 단위 시민들의 발걸음 소리로 적막을 겨우 깨뜨렸다.

당초 예정대로면 그 하루 전인 지난 3일부터 야구 관객의 발길이 이곳을 채워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발표된 ‘거리두기 단계별 기준 및 실행 방안’에 따라 프로스포츠의 제한적 관중 입장을 허용했다. NC의 경우 지난주에 창원 홈경기 6연전을 편성했다. 관중 유치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됐으면 NC는 지난 3일부터 시작된 주말 3연전에서 제한적으로나마 관중석을 채우고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광주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광주시는 지난 1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하면서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의 모임이나 행사를 금지했다. 광주는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프로축구 광주FC를 품은 호남권 프로스포츠의 중심지다. 광주의 코로나19 재확산세와 더불어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 소속이던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계기로 체육계에 뿌리 깊게 내린 폭력·위압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문체부의 관중 유치 논의는 중단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당초 제안했던 첫 관중 입장 규모는 경기장 수용인원의 30%. 2만2112석을 보유한 NC파크는 이 제안이 수용되면 7300명 안팎의 관객을 받을 수 있다. 이 인파는 고스란히 경기장 주변 상권에 생기를 불어넣는 소비자가 된다. 운동장사거리 한쪽에 터를 잡은 식당 점주는 “냉장고에 평소보다 많은 음료를 채우고 손님맞이를 준비했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야구 관객이 거리를 채우는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변 상인들은 살아있는 기분을 느낀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프로야구는 9일까지 전체 일정의 40%에 달하는 278경기를 소화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280경기 기준)까지 입장한 관중 수는 311만6259명, 입장권 판매 수익은 381억5750만원이다. 프로야구의 지난해의 관중 수는 728만6008명. 이미 관중 수익의 42%가 증발했다. 지금의 무관중 기조가 계속되면 경기장 주변 상인보다 큰 규모로 운영되는 프로 구단들의 생존도 낙관할 수 없다. 이에 KBO는 광주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장 9곳의 관중을 먼저 받을 계획도 제안했지만, 문체부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정부의 지침을 철저하게 이행하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 철저한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세우고 문체부의 관중 입장 승인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재확산 일본에선 관중 허용

경기장은 철저한 방역 체계를 가동해도 수천·수만명 단위의 인파를 특성상 감염병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또 TV 화면으로 노출되는 경기장의 관객은 감염병에 대한 경계심을 이완하는 ‘신호’로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장의 관중석 입장을 놓고 ‘포스트 코로나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라는 의견과 ‘2차 팬데믹의 기폭제’라는 지적이 양립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히로시마 도요카프가 지난달 19일 관중석을 팬 사진 입간판들로 채운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2020시즌 일본프로야구 개막전을 펼치고 있다. AP뉴시스

일본프로야구는 포스트 코로나 진입을 택했다. 사이토 아쓰시 NPB 커미셔너는 지난 6일 일본프로축구 J리그와 합동으로 실시한 코로나19 대책 11차 회의에서 최초 입장 규모를 5000명으로 제한한 관중 입장을 선언했다. 12개 팀으로 운영되는 일본프로야구는 이날 오후 6시 오사카, 지바, 고베, 후쿠오카, 나고야, 니시노미야에서 관중석 일부를 채우고 경기를 진행한다.

일본프로야구는 지난달 19일에 시작해 대만(4월 12일)·한국(5월 5일)보다 개막에서 늦었지만, 관중 유치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리그가 된다. NPB는 다음달 1일부터 경기장 수용 인원의 50%까지 단계적으로 관중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간격을 둔 착석, 다른 시간의 경기장 입·퇴장 배정, 요란한 형태의 응원 금지 등의 방침을 세우고 있다.

지바를 제외하면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서일본 지역 도시에서 경기가 열린다. 소프트뱅크 호크스 홈구장인 후쿠오카는 관객 1500명이 입장한다. 나머지 5개 경기장에서 5000명의 관중을 들인다. 만석이 되면 하루에만 2만6500명이 관중석에서 야구를 보게 되는 셈이다.

다만 일본 전역에서 최근 하루 200명 안팎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프로야구 관중 입장 허용이 성급했다는 우려가 크다. 일본 산케이스포츠는 “도쿄에서 지난 2일부터 닷새 연속으로 100명 이상의 감염자가 보고되고 있다”며 “감염병 대응단에서 프로야구의 관중 입장 허용을 지지했지만 ‘다시 증가 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