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심사 100% 공개 안하면 부실심사 또 반복된다”

입력 2020-07-09 04:08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된 뒤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표결에 불참했고, 정의당 의원들은 추경 심사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기권표를 던졌다. 연합뉴스

지난 3일 국회에서 통과된 35조1000억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 과정에선 고질적인 부실 심사 문제가 두드러졌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긴급하게 추진된 3차 추경은 불투명한 심사에다 여당 일부 의원의 민원 예산 챙기기까지 도마 위에 오르며 비판 여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민일보는 8일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등 5명에게 국회 예산심사 문제와 해법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3차 추경의 불가피성에는 동의하면서도 국회의 재정통제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새로 추진하거나 증액하는 사업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서면질의를 비롯한 비공개 심사 절차를 모두 공개하도록 하는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 예산심사의 구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일반 상임위원회로 전환해 전문성을 높이고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심사 과정에서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를 막기 위한 확실한 제동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5일간의 촉박한 3차 추경 심사 일정을 감안하더라도 졸속 심사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태윤 교수는 “3차 추경 심사는 각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제대로 못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향후 코로나 확산 상황에 따라 정부의 재정 지출이 또 필요할 수 있는데 추가 재정 투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교수도 “추경안 규모에 비해 심사 일정이 너무 짧았다. 코로나19와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추경안 처리가 빨리 이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창수 소장은 “일단 추경안을 통과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기존 사업의 액수를 늘리거나 무리하게 새로 만든 사업에 대한 지적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3차 추경안을 편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업타당성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상봉 교수는 “코로나19에 긴급하게 대응하려면 방역 관련 사업에 더 집중해야 했다”며 “목적이 불명확한 추경은 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판 뉴딜 사업 같은 경우에는 서비스산업 등 일부 업종에만 예산이 집중된 문제가 있었다”면서 1·2차 추경이 제대로 편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3차 추경이 불가피해졌다는 주장을 내놨다.

예산 심사에 야당이 불참한 것도 부실 심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박상철 교수는 “국회의 반쪽짜리 예산심의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야당이 비판적 시각으로 감액 심사에 적극 참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성수 교수는 “만약 야당이 심사에 참여했다면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추경안을 통과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 예산심사 시스템이 입법 활동과 정부 감독 기능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이번 3차 추경 심사에선 특히 여당 일부 의원들이 심사 과정에서 서면질의 등을 통해 민원성 예산을 챙기려다 철회하면서 비판 여론에 불을 붙였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은 부실 심사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선 이번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개별사업 심사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프로세스를 반드시 넣는 방안을 조속히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 교수는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와 연결되는 사업 예산을 직접 심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예산 심사 과정을 100% 공개해야 부실 심사, 예산 나눠먹기 심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교수는 “예산심의 과정에서 비공개로 돼 있는 부분을 모두 없애야 한다. 예결위 소위원회, 소소위원회 논의 과정을 모두 공개하고 회의록을 남기도록 하는 게 정상”이라며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봉 교수도 “의원들의 서면질의를 통한 증액안 목록은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예산 편성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재정준칙 도입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재정준칙은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국가부채나 재정지출 등의 한도를 법으로 정해 정부 재량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김상봉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돈을 펑펑 쓸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성 교수는 “재정준칙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재정에 대한 통제장치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언제든 돈을 갖다 쓸 수 있다는 인식이 있으면 타당성이 높지 않은 사업에 돈이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예결특위의 상임위 전환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정 소장은 “예산심의를 하는 예결위원들은 전체 의원(300명)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예결위원들이 예산을 삭감하거나 수정하는 비율은 전체 예산 중 1%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는 예결특위를 상임위로 운영해서 일상적으로 예산 모니터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예산심사를 하는 의원들의 전문성이 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예결특위를 일반 상임위처럼 위원 임기를 2년으로 하고 겸임을 할 수 없도록 해 예산 심의를 전문화하자는 취지다. 현재 예결특위 위원은 다른 상임위를 겸임할 수 있고 임기는 1년이다.

[3차 추경심사 추적기]





김경택 이상헌 이현우 박재현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