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과 전셋값이 치솟는 가운데 정세균 국무총리가 8일 “다주택 고위 공직자들은 하루빨리 주택을 처분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정부에서도 사실상 ‘1주택’을 강제하는 조처를 내린 셈이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 수도권 등 투기 과열지구에 2채 이상 집을 가진 청와대 참모들은 1채를 제외하고 처분하라고 권고했지만, 이행 실적은 미진했다. 최근 노 실장 자신도 실제 거주하지 않는 반포의 아파트 대신 청주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자 결국 반포 아파트까지 팔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까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데 부동산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힘을 받을 리 없다.
공직자라고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인 부동산 보유까지 간섭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주택 가격 안정 대책을 20번 넘게 내놓았다는 점에서 고위 공직자의 다주택 보유는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부동산 대책이 잇따르는 속에도 공직자들이 다주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 시장에 주는 신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직자들 자신도 집값이 내려갈 것을 믿지 않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약장수가 “몸에 정말 좋은 양약 중의 양약”이라고 약을 팔지만, 실제 가짜약임을 아는 자신은 그 약을 절대로 먹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까지 시중에서 나돈다.
지난 3월 26일 현재 고위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장 등 재산이 공개된 중앙부처 재직자 750명 가운데 약 3분의 1인 248명이 다주택자였다. 특히 주거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 고위 공직자 가운데 31%(16명 중 5명)가 다주택자이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56명 가운데 17명이 다주택자라고 한다.
지금 시점에서 정부 부동산 대책이 신뢰를 얻는 최소한의 조건이 고위 공직자들의 솔선수범이다. 국토부가 22번째로 준비 중인 부동산 대책의 주요 부분이 다주택자에 대한 강력한 규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설] 다주택 고위 공직자들이 먼저 모범 보여라
입력 2020-07-09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