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우 후폭풍… “한국 법원 자성을”-“사법주권 지켜야”

입력 2020-07-09 00:04

사법부가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했던 손정우(24)씨를 미국에 송환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해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그간 취약했던 성범죄 양형을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사법주권 문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관 후보자 명단에 포함된 한 법관은 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원이 국민의 눈높이나 법 감정에 맞지 않는 판단을 해왔다는 비판으로 이해한다”며 “그동안의 성범죄 양형을 법원이 반성하라는 신호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영수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가 지난 6일 손씨의 ‘국제 자금세탁’ 혐의(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범죄인인도심사에서 미국 불송환 결정을 내리자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 등 비판 여론이 들끓은 데 대한 반응이었다.

손씨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판매·배포 등)과 정보통신망법 위반(음란물유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2015년 7월~2018년 3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3000여건을 웰컴투비디오 사이트에 올려 회원 4000여명에게서 4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받고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손씨의 형은 지난해 5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로 확정됐다.

손씨의 범행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와 디지털 성범죄가 결합돼 있어 죄질이 좋지 않다는데 이견이 없다. ‘솜방망이 처벌’이었다는 지적에 대한 법원 내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미국 불송환 결정에 대한 질타는 결국 형 집행이 가벼웠다는 분노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했다. 한 형사합의부 재판장은 “사법부가 가해자에게 관대한 재판을 해왔다고 국민이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손씨의 성범죄를 가볍게 처벌한 것에 대한 성토와 별개로 자금세탁 혐의에 대한 미국 송환 여부는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주권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법관들은 손씨를 미국에 보내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범행이 아닌 자금세탁으로만 재판을 받는 점을 지적한다.

앞서 미국 법무부는 지난 5월 27일 “인도청구대상 범죄 중 일부만 허가가 있는 경우 인도 거절된 범죄의 기소는 기각된다”고 서울고법에 밝혔다. 한국에서 확정된 손씨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판매·배포 등 혐의는 한·미가 맺은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미국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국내법 적용이 가능하면 범죄인 인도는 가급적 자제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법관 출신의 변호사도 “국내 양형이 약하다고 외국에 보내는 걸 쉽게 허용해선 안 된다”며 “홍콩도 사법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중국이 강제한 ‘국가보안법’에 저항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손씨의 불송환 결정이 미국이 우리나라에 범죄인을 인도하지 않을 빌미를 준 것이란 반론도 있다. 그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할 문제”라며 “대결 구도로 가면 범죄인인도조약이 무력화되는데, 미국도 그걸 원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성범죄 양형기준 강화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당면 과제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범죄나 디지털 성범죄의 형량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오는 13일 회의에서 손씨 사건에 대한 여론도 어떤 형태로든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