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자 가운데 50.7%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잘했다는 응답은 38.5%에 그쳤다. 나머지 10.7%는 “잘 모르겠다”이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여야의 합의로 나누던 관행을 무시했다는 의견이, 집권당이 책임정치를 하는 길이라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보수나 중도 가운데 잘못했다는 답변이 각각 55.7%와 54.1%인데 진보 중에서도 잘못했다는 의견이 43.1%로 잘했다는 의견(46.0%)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한 데 대한 한 여론조사 결과이다. 리얼미터는 지난 1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오래된 관행을 바로잡는 일이란 이렇게 반대가 거세다. 게다가 독식 대신 분점이 민주적이라는 프레임까지 작동하다 보면 관행을 깨는 일의 의의나 정당성마저 맥을 못 춘다. 그러나 이번에 국회에서 국회법 제41조 제2항 ‘상임위원 중에서…본회의에서 선거한다’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것은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그 이유는 첫째, 앞으로 국회법에 따라 정시에 개원이 가능한 국회가 될 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회법 제41조 제3항은 상임위원장 선거에 대해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집회일부터 3일 이내에 실시하라’고 한다. 21대 국회의 첫 집회가 지난달 5일 열렸으니 상임위원장 선출은 이미 한 달 전에 끝났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동안 여야는 상임위원장을 어떻게 나눌지 또 법사위원장은 누가 차지할지를 가지고 밀당하느라 허송세월했다. 아직까지 21대 국회 개원식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회법에 따라 총선거 후 첫 집회일이면 의장단을 선출하고 그다음 3일 안에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게 될 것이다.
둘째,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일이 실상 국회의 민주적 운영이나 협치와 관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상임위원장을 몇 개씩 나누고 법사위원장을 누가 갖느냐 하는 일을 정의기억연대 관련 국정조사, 한명숙 전 총리 법사위원회 청문회,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과 연계시켰다. 어느 당이 어느 상임위원회에 더 전문성이 있고 어느 당이 어느 상임위원회에서 국익을 위해 더 실력을 보여줄 수 있으니 어떻게 상임위원장을 분배하자는 협상이 아니었다. 상임위원장을 나누는데 상임위원장과 전혀 무관하거나 서로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협의하는 것이 협치이고 민주주의는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개원 협상이라는 미명 아래 상임위원장을 정략적으로 나눠먹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셋째, 법사위원장이 야당이어야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상임위원장 배분의 핵심은 누가 법사위원장을 갖느냐였다. 법사위원장이 항상 야당 몫은 아니었다. 야당 법사위원장이 처음 탄생한 것은 1998년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처음으로 이뤄지자 한나라당이 15대 국회 하반기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다음부터 법사위원장 자리는 야당 몫으로 남았다.
1951년부터 법사위원회에 체계와 자구 심사권이 부여됐는데 야당 소속 법사위원장은 이를 무기로 줄곧 게이트키핑 역할을 해왔다. 다른 상임위원회에서 전문적으로 심의한 법안을 법사위원회가 체계와 자구 심사권으로 법안을 뜯어고치거나 통과를 지연시키거나 또는 아예 폐기하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만 법사위원회가 다른 상임위원회 통과 법안 91건을 폐기시켰다. 18, 19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회가 평균 100건 이상을 폐기시켰다. 앞으로는 법사위원회의 체계와 자구 심사 권한도 내려놓도록 손질을 해서 아예 정쟁의 소지를 없애고 국회법에도 없는 법사위원회의 이른바 상원 노릇을 막아야 한다.
국회의원 임기 시작은 총선이 끝난 뒤 5월 30일부터이다. 민주화 이후 국회가 원 구성을 마치는 데 평균 41일 넘게 걸렸다. 21대 국회에서도 그 평균을 넘기는 중이다. 이왕 여론에 두들겨맞는 김에 확실하게 관행은 깨고 국회법은 준수해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데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것이 낫다. 만약 지금까지 상임위원장을 나누고 야당 시절 법사위원장 자리도 차지했던 민주당이 관행에 참여했던 것에 대해 국민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통합당도 손해만 보겠나. 다음에 다수당이 되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다 차지하고 맘껏 일하게 될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