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다친 것도 억울하지만 국가가 보훈대상자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게 더 원망스럽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6일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국가의 보훈 책임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보훈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라며 “모든 희생과 헌신에 국가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복무 중 부상을 입은 청년들은 대통령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했지만 국가로부터 외면받고 있다고 했다.
변재현(34)씨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건 국가와 싸우는 과정”이라고 정리했다. 변씨는 2007년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에서 귀순자 유도 작전 수행 중 부상을 당했다. 30kg 군장을 메고 가파른 철제 계단을 내려가다 무릎이 꺾인 것이다. 자신이 보훈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변씨는 10년이 지난 2017년에 처음 보훈심사를 신청했다. 그는 “우연히 관련 유튜브를 본 친구가 정보를 알려줘 신청할 수 있었다”며 “국가로부터 아무런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변씨는 서울의 한 보훈지청을 상대로 국가유공자 요건변경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보훈처가 변씨가 수행한 작전을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으로 판단해 국가유공자가 아닌 보훈보상대상자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보훈보상대상자가 받는 지원은 통상 국가유공자의 70% 수준이다. 변씨는 “GP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다친 것이 국가의 수호와 무관하다면 대체 누가 유공자인 것이냐”며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억울함을 해결하려고 1000만원 가까이 들여 소송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상자들에게 보훈제도가 제대로 안내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민간보다 훨씬 엄격한 판정 기준으로 인해 예상했던 등급보다 낮은 상이등급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어렵게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 받은 백현민(28)씨는 강릉지역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2014년 2월 제설 작전에 투입됐다가 건물 지붕에서 추락해 손목을 다쳤다. 백씨는 “손목뼈가 10조각 넘게 분쇄골절됐고 오른팔 운동능력의 절반을 상실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백씨가 보훈심사위위원회 심사를 거쳐 받은 최초 상이등급은 최저등급인 7급이었다. 백씨는 “의사들도 50% 이상 운동능력 상실이 있다고 인정했는데 (보훈심사위에서) 25%만 인정을 했었다”라며 “재심신체검사를 받고 6급2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보훈처가 일부러 부상장병들을 보훈제도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상이등급 심사 기준은 실제로 엄격하다. 중앙보훈병원이 2014년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재해보상법 등 국내 장애등급 관련 법들은 장애를 14등급으로 세분화해 보상하지만 보훈 상이등급은 7등급으로 분류한다. 산재법 최저 등급인 14등급은 신체장애율이 5% 정도이지만 상이등급 7급은 10%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다.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상이등급 심사를 받은 공상군경·재해부상군경 1398명 중 63.5%인 889명은 ‘기준미달’ 판정을 받았고, 23.6%인 330명이 7급 판정을 받았다. 신청을 못한 이들은 제외한 수치다. 군병원 방문 외래환자가 연간 160만여명이고 입원환자가 4만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보훈대상이 되는 대상은 극소수에 불과한 셈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보훈대상자는 해당자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 신청주의를 택하고 있어 개인별로 안내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보훈처에 문의하면 절차를 안내해 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상이등급 기준이 엄격하다는 지적엔 “등급기준은 지속적으로 완화하는 등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
군복무 중 부상을 당한 청년들의 가장 큰 근심은 생계, 즉 전역 후 취업 문제다. ‘2018년 국가보훈대상자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40대 이하 보훈대상자들이 가장 확대되어야 할 보훈 분야 1순위로 꼽은 건 소득보장(33.5%)과 취업·창업(30.7%), 의료(12.8%) 순이었다.
1999년 유격훈련 중 발목을 크게 다친 김모(40)씨는 “다친 다리로는 꿈이었던 소방관이 될 수 없었다”며 “서있지 못하니 취업도 못해 20년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유공자 신청을 5차례나 했지만 모두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며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다”고 했다.
백씨도 취업을 포기한 상태다. 손목 부상 이후 난치성 희귀질환인 섬유근육통을 앓게 됐기 때문이다. 백씨는 “신경계에 작용하는 진통제 약을 먹으면 집중이 어려운 부작용이 있다”며 “공부를 하기도 어려우니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부상을 당한 보훈대상자들에게 불리한 취업 지원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보훈처의 취업 지원 제도가 있지만 같은 지원을 받는 건강한 유공자 자녀들과 경쟁해야 한다”며 “기업에서 굳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뽑아주겠냐”고 꼬집었다. 그의 소득은 매달 받는 보훈급여금 94만3000원이 전부다.
안종민 천안함전우회 사무총장은 부상 장병들을 국방부와 보훈처가 통합해 관리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 사무총장은 “부상 장병들을 국방부와 보훈처가 따로 관리하니 보훈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장병들이 대다수”라며 “신청주의 대신 국방부의 의병전역 자료를 토대로 국가기관이 자동적으로 장병에게 알리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군에서 다친 청년들이 대다수 일용직 근로를 전전하는 현실에서 부상 특성을 고려한 디테일한 취업 지원책 등도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