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7일 한국에 도착했다. 비건 부장관은 청와대와 외교부 인사들을 두루 만나 한·미 양국 현안과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북한은 비건 부장관 방한 당일 자신들은 북·미 대화에 관심 없으며 우리 정부도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다음 달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대북 제재 해제 등을 포함한 선제적 조치를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비건 부장관은 이날 오후 미 군용기편으로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당초 비건 부장관 일행은 미국에서 가져온 코로나19 음성 진단서를 제출하는 대신 입국 검사와 자가격리 조치를 면제받는 신속 입국 혜택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우리 보건 당국이 오산 기지에서 비건 부장관 일행과 항공기 승무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면서 입국 절차가 지연됐다. 일행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예상치 못한 검사 탓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과 함께 대사관저에서 ‘닭한마리’로 만찬을 하려던 계획이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부장관은 8일 오전 외교부를 찾아 강경화 장관과 조세영 1차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잇달아 만날 예정이다. 오후에는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상견례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우리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 방한 당일 북·미 접촉 가능성을 기대하지 말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권 국장은 우리 정부를 겨냥해 “참으로 보기에도 딱하지만 중재자로 되려는 미련이 그렇게도 강렬하고 끝까지 노력해보는 것이 정 소원이라면 해보라”며 “그 노력의 결과를 보게 되겠는지 아니면 본전도 못 찾고 비웃음만 사게 되겠는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국장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함께 북·미 협상의 실무진으로 꼽힌다. 최 제1부상은 지난 4일 “우리와 판을 새롭게 짤 용단을 내릴 의지도 없는 미국이 어떤 잔꾀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구태여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오자 권 국장이 나서 대화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북한은 비건 부장관의 방한을 염두에 두고 남한과 미국에 태도 변화를 재차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섣불리 대화를 시도하기 전에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대북 제재 완화 등 성의를 먼저 보이라는 것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