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니홈피’ 열풍을 일으킨 1세대 SNS 싸이월드와 MP3 플레이어계의 절대강자 아이리버가 탄생했다. 정보기술(IT)·벤처 붐이 한창이었다. 두 동갑내기 회사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IT 기술을 바탕으로 밀레니엄 ‘인싸’들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글로벌 기업인 페이스북과 애플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싸이월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처지에 놓인 반면 아이리버는 사업 구조를 탈바꿈해 음원 시장에서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오디오 압축기술로 용량을 줄인 MP3 파일이 확산하면서 음원 재생기기인 MP3 플레이어 시장도 빠르게 커졌다. 국내 기업 아이리버(당시 레인콤), 삼성전자, 코원, 엠피오 등이 MP3 플레이어 사업에 뛰어들었고, 세계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아이리버는 업계를 주도하던 업체였다. 부피가 큰 워크맨,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어야 했던 국민들은 가벼우면서도 특색 있는 디자인의 아이리버 제품에 주목했다. 최근 별세한 아이리버의 창업자 양덕준 레인콤 대표는 창립 5년 만에 매출 4500억원을 올리며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아이리버의 국내 MP3 시장 점유율은 80%, 세계 시장 점유율도 25%에 이르렀다.
아이리버는 곧 도전에 직면했다. 애플이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대결 상대로 아이리버를 지목할 정도로 입지는 탄탄했다. 아이리버는 애플의 도전장에 호기롭게 사과를 씹어 먹는 광고를 선보이며 대응했다. 하지만 애플은 강했다. 파일 전송 과정을 줄여 편리성을 높인 자체 음원 플랫폼 ‘아이튠즈’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이에 아이리버는 아이팟과 유사한 디자인의 제품과 카메라 기능이 탑재된 제품 등을 내놓으며 새로운 시도에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선택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후 2009년 11월 애플의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전화+음원재생’ 기기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불법 음원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되면서 아이리버를 비롯한 MP3 플레이어 산업은 회생이 어려워졌다.
이후 아이리버는 미디어 전반으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과거의 영광 재현에 나섰다. 2014년 SK텔레콤에 편입된 이후 사명부터 ‘드림어스컴퍼니’로 바꿨다. 현재 이 회사는 음향기기, 미디어 플랫폼, 음원 유통, 공연 투자·기획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주력 상품은 음원스트리밍 서비스인 ‘플로(FLO)’다. 인공지능(AI)에 기반한 맞춤형 음원 추천 서비스를 내세우면서 SK텔레콤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아이리버와 함께 시대를 풍미하던 싸이월드는 2000년대 초반 가입자 3000만명을 보유하면서 전 국민의 소통 창구로 기능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글로벌 SNS 시장을 휩쓸던 당시에도 국내 시장에는 이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이버머니 ‘도토리’로 미니홈피의 배경음악과 아바타 ‘미니미’ 아이템 등을 구매해 공간을 꾸밀 수 있게 함으로써 탄탄한 수익모델도 구축했다. 당시 플랫폼 기업으로서 보기 드문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싸이월드는 2003년 SK텔레콤의 자회사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돼 포털 네이트와 결합했다. 미니홈피로 바로 이동할 수 있게 연동한 네이트온도 싸이월드의 인기와 함께 1등 메신저로 입지를 다졌다. 대기업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싸이월드였지만 2004년 미국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페이스북 앞에서는 무력했다.
개인 공간이라는 성격이 강했던 싸이월드와 달리 게임·심리테스트, 동영상, 기업의 홍보상품 등에 대한 반응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페이스북은 확장성 면에서 싸이월드를 압도했다. 글로벌 SNS 사용자들을 향한 연계 서비스도 쏟아져 나오면서 플랫폼에 유통되는 콘텐츠도 한껏 풍성해졌다.
또 페이스북과 달리 싸이월드는 당시 대세로 굳어져 가던 모바일 환경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페이스북 플랫폼으로 대이동을 시작했고, 싸이월드는 점차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결국 2013년 모기업 SK커뮤니케이션즈의 경영난으로 분사한 싸이월드는 2년 뒤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미니홈피 서비스 ‘싸이홈’을 내놨지만 이 역시 시장의 혹평을 받았다. 어색한 디자인과 일촌평·방명록 등 기존 기능의 폐지, 접속 장애 등이 발목을 잡았다.
현재 싸이월드는 세금 체납 등을 이유로 사업자등록이 말소된 상태다. 사무실 운영도 여의치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용자들은 추억이 담긴 데이터를 되찾기도 어려워졌다. 전제완 대표가 서비스 복원을 위한 투자처를 물색하는 등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싸이월드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100억원에 이르는 싸이월드의 부채와 정상화 비용을 떠안겠다고 나설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싸이월드의 부활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