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12개의 액정표시장치(LCD) 화면이었다. 가로 두 줄, 세로 여섯 줄로 늘어선 화면을 보니 전국 지도와 함께 특정 지역이 확대돼 펼쳐져 있었다. 빨간색 띠로 경계가 표시된 지역 정보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옆 화면도 눈에 띄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이후 중점관리지역으로 지정된 접경 지역 14개 시·군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 6일 찾은 경북 김천시의 농림축산검역본부 4층에 위치한 방역상황관제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40㎡ 규모로 조성한 이곳 관제실의 불이 꺼지는 날은 없다고 한다. 공중방역수의사 3명이 하루씩 돌아가며 24시간 근무를 선 뒤 이틀을 쉰다.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예외는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축산질병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려면 불가피한 조치다. 특히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ASF의 위협을 고려하면 한시도 눈을 떼기 힘들다. ASF를 전파할 수도 있는 축산 차량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2014~2015년 구제역 역학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발병한 구제역의 78.9%가 축산 차량으로 인해 전파됐다.
지난달 기준 26만4771곳의 축산 농장, 9765곳의 축산 시설과 함께 6만1000여대의 축산 차량을 관리·감독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축산 차량 관리 방식이다. 전국 축산 차량의 이동 상황이 위성항법시스템(GPS)을 통해 실시간 전송된다. 전송된 정보는 관제실 화면에 표출된다. 차량 용도별로 구분돼 있는 색상의 차들이 화면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가축 운반차량은 빨간색, 계란 운반차량은 녹색 등으로 구분이 가능했다. 이동 정보는 기록으로 남는다. 지난달 기준 69억3291만여건의 누적 이동건수가 데이터로 구축됐다고 한다.
단순히 데이터만 모이는 것이 아니다. 검역본부가 보유한 슈퍼컴퓨터의 능력은 보다 많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7월 가동된 새로운 시스템에는 축산 차량이 위험 지역에 가지 못하도록 조치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다. 발생 이후 대응이나 역학조사용으로 주로 활용되던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KAHIS)에 ‘예방’이라는 기능이 더해졌다.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시스템을 개비했다”고 설명했다.
방역 측면에서는 획기적인 변화다. KAHIS는 축산 차량이 발생 농장이나 이동 제한선의 3㎞까지 접근하면 관제실 근무자에게 경고음을 알릴 수 있게 됐다. 이후 관제실은 1차로 문자를 발송해 경고 조치를 취한다. ‘접근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식의 안내다. 발송된 문자는 축산 차량에 설치된 단말기에서 기계음성으로 변환돼 안내된다. 최근 도입된 단말기는 매립형이라서 코드를 빼놓을 수도 없는 데다 음소거 기능도 없다. 운전자는 싫든 좋든 경고를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현황 안내가 스마트폰에 실시간으로 뜨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효과는 ASF 방역이라는 결과물로 확인됐다. 진화한 KAHIS의 첫 시험무대였던 ASF 발생 이후 차량 이동은 과거와 달리 극단적으로 차단됐다. 덕분에 지난해 9월 발생한 ASF는 23일간 기승을 부린 뒤 사육돼지 농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또 하나의 'K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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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글·사진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