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질의’로 민원예산 챙긴 與의원들… 비판일자 슬쩍 철회

입력 2020-07-08 04:02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국회 심사에서도 고질적인 민원예산 챙기기는 예외가 없었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은 서면질의를 통해 549억여원의 민원예산 증액을 물밑에서 시도했다. 하루 뒤인 지난 1일 조정소위 심사자료가 공개됐고, 민원예산 증액 시도가 드러나면서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거센 비판에 민주당은 추경에서 민원예산을 원천 배제했다. 본예산 또는 추경예산 심사 때마다 되풀이되던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 예산 챙기기 구태는 역대 최대 규모로 긴급 편성된 추경안 심사 과정에서도 반복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일보가 7일 국회의 3차 추경 조정소위 심사자료와 서면질의 목록 등을 분석한 결과 이번 추경 심사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 5명이 10개 사업, 549억 100만원의 민원성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서면질의 방식으로 증액 요구가 이뤄진 민원 예산 대부분은 의원들 지역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들은 결과적으로 야당의 공세와 비판 여론에 밀려 철회되거나 심사 대상에서 빠져 결국 추경에 반영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심사 과정에서 예산 끼워넣기는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그 해답은 서면질의에 있다. 민원예산 증액을 요구한 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서면질의로 증액 의견을 제출했다. 의원들은 국회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또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에서 구두 또는 서면질의를 하는 방식으로 예산 증액을 시도할 수 있다. 서면질의를 통한 예산 증액은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서면질의 방식은 실시간 공개되는 예산심사 회의에 비해 은밀하게 예산을 챙길 수 있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서면질의는 여야 예결위 간사들이 취합해 제출하기 때문에 예결위 간사와 질의를 한 의원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국회 관계자는 “공개된 회의에서는 눈총을 받을 수 있으니 의원들이 서면으로 제출하고, 조정소위에 지역구 예산 증액안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인호(부산 사하갑) 민주당 의원은 심사 과정에서 서면질의를 통해 역사 이동편의시설 확충 사업에 32억원을 증액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 사업은 최 의원 지역구에 있는 부산도시철도 대티역 등에 엘리베이터 및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기 위한 것이다. 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부적절한 측면이 있었고 논란이 일면서 즉각 철회했다”고 말했다.

서동용(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 민주당 의원은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 고압 송전선로 일부를 땅 밑으로 깔기 위한 예산 20억원, 전남 여수산단 산업 관련 기반시설 구축 예산 30억원을 반영시키려고 했다. 서 의원은 “지역구가 있는 전남도에서 요청해온 사업들을 검토해 증액 의견을 냈던 것”이라며 “일자리와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지역 예산으로 분류돼 배제됐다”고 말했다.

3차 추경안 심사에선 서면질의뿐 아니라 부대 의견을 붙이는 방식으로도 민원예산 챙기기가 시도됐다.

서영석(경기 부천정) 민주당 의원은 추경 심사에서 부대 의견으로 ‘국토교통부는 원종-홍대선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원종-홍대선은 서 의원 지역구인 경기 부천과 서울 홍대 입구를 잇는 광역철도사업이다. 국회 관계자는 “법률상 부대 의견이 곧바로 증액으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증액 요구를 받은 정부 부처로선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면질의에다 부대 의견 제출까지 동원된 민원예산 챙기기는 외부에 즉각 공개되지 않았다.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이틀 전인 지난 1일 3차 추경 조정소위 심사자료가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뒤에야 이런 증액 요구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코로나19 대응과는 거리가 먼 지하철역 이동편의시설 확충 등 사업예산이 갑자기 끼어들어 간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미래통합당은 13개 사업에서 증액이 요구된 3571억원이 여당의 지역 사업 예산 챙기기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싸늘해진 여론에 급히 지역 민원 사업을 심사에서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민원성 예산을 요구했던 의원들은 서면질의 제출 이틀 만에 스스로 증액 요구를 철회했다. 민주당 소속 정성호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지난 3일 3차 추경 심사를 위해 열린 마지막 예결특위 조정소위에서 “여러 위원과 단체장들께서 당면한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여러 증액 의견을 주셨지만 지역구 관련 예산은 배제하고 기업과 중소상공인, 노동자, 청년, 어르신 등을 위한 정책사업, 예산사업만을 중점적으로 증액 검토했다”고 말했다.

결국 비판 여론이 들끓자 민주당 의원들이 요구한 민원예산들은 1일부터 사흘간 열린 조정소위에서 심사되지 않았고, 추경에 반영되지 않았다. 통합당이 민원예산이라고 주장한 13개 사업 중 한국해양진흥공사 출자를 비롯한 3개 사업 예산 3022억원은 지역 민원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민주당은 항변했지만 모두 3차 추경에 반영되지 않았다. 예결특위 민주당 간사인 박홍근 의원은 국민일보 통화에서 “민원 예산들이 조정소위에 올라오면서 논란이 됐으나 의원들이 자진 철회하거나 심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 반영도 안 됐다”며 “추경 목적과 아예 무관하게 낸 것이라면 개별 의원의 판단이 부적절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불투명한 예산 심사는 법률 개정을 비롯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본예산과 추경 심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민원 예산 챙기기는 고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해 1·2차 추경 심사 과정에서도 서면질의를 통한 민원성 예산 증액 시도는 적지 않게 이뤄졌다.

이에 따라 심사가 진행 중이더라도 서면질의 내용은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전문위원은 “서면질의 목록은 국회 내부자료이기 때문에 접근할 수 없다. 확정된 예산 자료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서면질의까지 모두 공개해야 투명한 예산 심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3차 추경심사 추적기]





이상헌 이현우 박재현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