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능력 없는 체육계 ‘폐쇄 구조’, 외부로 부터 뜯어 고쳐야

입력 2020-07-08 04:02
김규봉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이 지난 6일 국회 문화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의 고 최숙현 선수에 대한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침해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고(故) 최숙현(23)씨 사건 뿐 아니라 체육계에 만연한 인권 문제의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나온 뒤에야 개선책을 모색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처가 문제를 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체육계의 폐쇄성을 개혁하기 위해선 관계 기관들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단 분석이 많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지난 2일 가동된 특별조사단의 특별감사, 타 부처와의 협업을 통한 체육계 인권 문제 해소를 약속했다. 다음달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엔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하고 25명인 인력을 더 보강하며 비상근으로 규정돼있는 센터장을 상근으로 바꿔 위상과 권한을 강화한 기구로 발족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사후적 조치들이 스포츠계 ‘악의 고리’를 청산할 수 있을 지엔 의문이 제기된다. 전날 추가 피해를 증언한 최씨의 경주시청 동료들은 “가해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고소를 못했다”며 폭행·폭언을 쉬쉬하는 체육계 폐쇄성을 지적했다.

전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의 질의에선 정부 기관들의 ‘무책임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4월 8일 최씨가 클린스포츠센터에 신고했지만 조사가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에 보낸 보고서엔 지난달 25일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단 기본 사실도 누락됐다.

사실 박 장관이 이날 브리핑에서 밝힌 대책들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권고안에 애초 담겨있던 내용이다. 입법 과정에서 부처의 입김이 작용하고 정당 간 합의가 늦어지면서 원래 의도가 퇴색된 것. 게다가 윤리센터에 지원한 25명 중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는 단 1명만 신청한 사실도 이날 드러났다.

혁신위에 참여했던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권고안 내용이 변질되며 사무국장·팀장을 문체부 공무원이 임명되도록 했는데 입맛대로 센터를 좌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 지적했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은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일할 때 징계 당사자들이 지인들을 동원해 청탁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인권 업무를 하는 조직인 만큼 외압에 굴하지 않을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사건 성격이 폭행 횡령 등이기에 스포츠 전문성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고 조언했다.

대한체육회의 말 뿐인 ‘사죄’도 지난해 빙상계 성폭행 사건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에 대한체육회 구조개혁과 인적쇄신 요구가 거세다. 정 교수는 “체육회가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통합돼 있기에 (선수를) 때려서라도 메달 따면 다 용서되는 문화가 생겼다”며 “NOC를 떼어내 체육회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확립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학부 교수도 “체육회가 매번 사과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게 양치기 소년같다”며 “잠잠해지면 다시 메달과 성적에만 몰두할 것이기에 NOC는 분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