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정은 남매의 ‘표상으로서의 건축’

입력 2020-07-07 04:03

지난 16일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공학적으로만 보면 대실패다. 김여정이 “형체도 없이 무너질 것”이라 했으나 머쓱하게도 4층짜리 골조는 멀쩡히 남았다. 폭파로 건물을 해체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역설계(逆設計)를 통해 구조의 특이점을 찾아 소량의 폭약을 써서 부러뜨려야 한다. 마디들이 순차적으로 관절(hinge)이 되면 건물 자중에 의해 소롯이 주저앉는다.

9.11테러 때 월드트레이드센터는 1시간여 화재로 철골이 녹아 관절이 되면서 붕괴했다. 108층짜리를 무너뜨릴만한 화재를 위해 테러범들은 연료를 가득 실은 장거리노선 비행기를 납치했다. 또 상징성도 있으면서 연료탱크인 날개가 손상 없이 뚫고 들어 갈만큼 가늘고 촘촘한 기둥을 가진 이 건물을 택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이번 사건은 북한이 핵이나 로켓 같은 군사공학(military engineering)에는 능숙하되 정작 폭파해체공법 같은 민간공학(civil engineering)에는 젬병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해프닝일 수도 있다. 구소련이 그랬다. 반면 폭발퍼포먼스를 통해 울화를 터트릴 요량이었다면 옆 건물 유리창까지 박살내는 스펙터클은 나름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진부하고 유치한 수법이기는 하지만.

전쟁터에서 승리의 시점은 적의 군기(軍旗)를 빼앗는 순간이다. 한갗 헝겊이던 깃발은 이제 군대의 의지가 서린 표상(Vorstellung)이 되기 때문이다. 개선문이나 궁전, 대성당, 바로크식 도시처럼 건축도 훌륭한 표상의 도구다. 살아서도 그렇지만 건축은 죽을 때 더 드라마틱한 표상이 된다.

건조물 파괴를 통한 표상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담론이나 헤게모니 몰락의 시점에 종종 등장한다. 1945년 4월 22일 연합군은 나치 당대회장이던 뉘른베르크 제펠린 스타디움의 卍자 문양 탑을 폭파하는 영상을 통해 승전을 세계에 알렸다. 2001년 무너지는 쌍둥이 빌딩의 모습은 미국의 심장부도 공격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의 원천이 된다.

‘근대건축’이 죽은 시간을 아시는가? 건축평론가 찰스젱크스는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22분”이라 말한다. 합리성에 바탕 둔 근대건축 이론으로 지어졌으나 결국 슬럼으로 변한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이고’ 아파트단지가 폭파공법으로 철거된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산외인 아파트가 폭파 철거된 1994년 11월 20일을 남산의 주권을 회복한 날로 기록한다. 조선총독부였던 중앙청을 철거하는 1995년 8월 15일, 폭파 대신 사람으로 치면 상투에 해당하는 중앙 돔의 랜턴을 쇠톱으로 잘랐다.

애먼 건물에 대한 이번 폭파쇼는 저들 표현대로 “북남 관계 총파산”의 몸짓이자 새 2인자 권력의 등장을 알리려는 표상이다. 한편으로는 파쇼권력들이 건축을 선전의 도구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새삼 일깨우는 사건이기도 하다. 앞선 세기 히틀러, 무솔리니는 물론 반대 진영의 스탈린도 그리스 로마 복고풍의 건축을 애호했다. 그들에게 건축은 정통성을 부여해주는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금수산궁전이 신고전주의 풍이고 인민대학습장은 청기와를 얹은 절충주의 건축인 것도 이 연장선이다. 작년 10월 금강산관광지구 시설을 둘러본 김정은 위원장은 “민족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범벅식이고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고 우리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남매가 ‘표상으로서의 건축’을 통해 남쪽에 대한 적개심과 자기우월성을 표현한 셈이다.

표상에서 비표상으로 넘어가면서 근대미술이 탄생했다. 예컨대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며 ‘무엇’을 그린 것이냐고 묻지 않는다. 이는 근대건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아직 건축을 표상으로 여기고 있다. 이쪽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적지 않은 지자체장들이 현대식 청사설계에 기와지붕을 주문한다. 현대는커녕 중세와 근대 사이 어디쯤 머물고 있는 한반도 건축들의 ‘웃픈’ 풍경이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