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후보자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전진 배치하면서 문재인정부 2기 외교안보라인은 ‘북한통’ 일색으로 채워지게 됐다. 서 후보자와 박 후보자 모두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 채택의 주역으로 대북 정책 분야에서 존재감이 큰 인물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확산 등 글로벌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북한에만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2기 외교안보라인 구성에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깊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관계 개선에 집권 후반기 역량을 총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특히 박 후보자를 국정원장으로 깜짝 내정한 것은 문 대통령 본인의 결정이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다음날인 지난달 17일 남북 관계 원로 초청 오찬을 가진 이후 박 내정자를 차기 국정원장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일 “박 후보자를 낙점한 것은 오로지 문 대통령의 결정으로 안다”며 “선거 때 있었던 과거사보다는 국정과 미래를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2003년 대북송금 특검으로 옥고를 치른 악연이 있다. 2017년 대선 정국 때는 국민의당 소속으로 문 대통령을 매일 아침마다 격렬히 비난해 ‘문모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번 외교안보라인 2기 인사의 핵심은 남북 대화와 협력, 관계 진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인사 개편이 남북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는 유보적이다. 최고도로 치달았던 남북 간 긴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계획 보류 지시로 일단 해소됐지만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음을 암시하는 정황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북한은 당분간 내치에 집중하며 제재 국면을 자력으로 돌파하겠다는 메시지만 발신하는 중이다.
새 외교안보라인이 대북 정책 분야에 편중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이끌었던 1기 외교안보라인은 핵심 보직에 북한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와는 정반대로 2기는 대북 정책 쪽으로 무게추가 급격히 쏠리면서 외교 전문가가 설 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이번 인사는 북한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며 “북한 분야는 전문성이 있겠지만 더 큰 문제에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북한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게 미·중 갈등이고, 코로나19 이후에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도 확실치 않다”며 “지금은 북한에 집중할 게 아니라 큰 틀에서 우리의 공간을 넓혀야 할 시기다. 이번 라인 교체는 그 범위를 좁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외교 기능이 축소되면서 외교부가 힘을 받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원년 멤버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유임된 것으로 미뤄 외교부 차원에서 역할 변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여권의 입김이 더욱 세지면서 외교부가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외교부와 미 국무부 소통 채널인 한·미 워킹그룹 폐지를 주장하는 등 외교부에 비판적인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고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고 경제집중 노선으로 가겠다고 천명하는 마당”이라며 “북한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는 것으로 과연 비핵화를 설득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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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