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솔방울 하나로 수많은 놀이 ‘또 하나의 교실 놀이터’에 주목

입력 2020-07-06 17:42
미취학 어린이들이 지난달 제주 고내봉에서 숲놀이의 재미에 빠져 있다. 아이들은 벌레를 관찰하고 진흙을 만지고 소꿉장난을 하는 모습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지난해 11월 ‘2020년 예산안 편성’ 관련 기자회견에서 유아교육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앞으로 유아교육의 핵심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지역의 역사와 인문학 과학 생태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제주교육청은 유치원 교육과정을 놀이 중심으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주유아체험교육원 신설, 유치원 실외놀이공간 설비기준 변경 등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돛 올린 제주형 기적의 놀이터

이 교육감은 올 초 ‘유치원 실외놀이터 설비 기준’을 전국 최초로 개정한 데 이어 오래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멈춘 옛 학교 공간에 제주형 기적의 놀이터 조성을 시작했다. 아이 학부모 등 각계와 무엇을 어떻게 담아낼지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제1호 제주형 놀이터’가 될 제주유아교육체험원(가칭)은 2022년 3월 제주시 회천동 옛 삼양초교 회천분교장(부지 1만1183㎡) 일원에 계절과 날씨를 온전히 즐기는 자연체험형 놀이터로 지어질 전망이다. 나무와 잔디, 밭담(밭의 경계를 알기 위해 쌓은 제주 돌담), 꽃밭(제주의 신화에 등장하는 서천 꽃밭을 모티브로 만든 정원) 등이 자연 놀이터의 재료가 된다.

나무를 만지고 밧줄에 매달리고 그물에 오르는 몸 쓰기 놀이가 이뤄지고, 물과 모래로 아이들이 원하는 형태를 만든다. 나와 타인을 모두 존중하는 놀이터,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놀이터도 들어선다. 인근 새미숲(1만8815㎡)을 연결하면 아이들은 3만㎡의 드넓은 공간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색다른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당초 2021년 3월로 예정했던 완공 일정은 2022년 3월로 1년 늦춰졌다. 예산은 99억원에서 186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놀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했고 아이들이 공감하는 놀이터, 지역사회 어른들의 관심과 함께 완성되는 제주형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참여와 공유의 시간을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유아체험교육원 공간구성 방안 연구용역이 완료됐고, 조만간 실시설계용역이 시작된다.

2년뒤 제주형 기적의 놀이터인 제주유아체험교육원(가칭)이 들어설 옛 삼양초교 회천분교장의 모습.

다시 떠오른 ‘놀이’

제주도교육청이 놀이와 놀이공간에 남다른 관심을 두는 이유는 두 가지다. 아이들의 성장에 중요하고, 획일적 형태의 공간은 아이들의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장의 관점에서 놀이는 어린 시절의 행복과 재미이자 성인으로 온전히 성장하는 데 중요한 징검다리다. 과거 놀이가 일상에 존재해왔던 것과 달리 요즘 아이들에게 놀이는 제한된 형태로 제공된다. 증가한 학습량, 실내에서 통제되는 시간의 증가,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 앉아서 하는 IT 문명의 보급 때문이다.

놀이 환경 구성은 공교육과 지역사회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제주교육청은 2년 뒤 들어설 유아체험교육원이 단순한 놀이 공간을 넘어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지역사회에 알리는 마중물이 되기를 원한다. 아이들이 넓고 개방된 광장에서 ‘마음껏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숲 나무집에서 자신들의 작은 세계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혹은 봄나물, 여름 열매, 가을 낙엽, 겨울 솔방울 하나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여름이 한창인 옛 회천분교장에는 학교의 오랜 역사(1963년 개교)를 말해주듯 수십 그루의 거목과 돌담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30년 전 폐교로 아이들이 떠나간 이곳은 다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시대가 원하는 인재? 놀이에 답이 있어요!

“우리의 아이들, 어떻게 커야 할까요. 타인의 문제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 기반사회에서도 행복하게 삶을 꾸려가야 하겠죠. 그래서 ‘놀이’가 중요합니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사진)은 유아교육 방향을 자연과 함께 뛰노는 놀이로 전환하고 있다. 2015년 어린이날 전국 교육감들과 ’어린이 놀 권리’를 선언하고, 교육현장의 실질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 교육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전망할 때 유치원과 저학년 교육은 독서와 예술적 감수성, 체력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 세 가지 교육적 목적을 구현할 수 있는 대표 상징이 바로 놀이, 놀이터”라고 강조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아이 한 명 한 명이 국가 미래에 있어 매우 소중해졌고, ‘평가 혁신’이 대한민국 교육의 제1과제가 된 사회에서는 아이 한 명 한 명의 생각과 가능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교육이 필요해졌다”며 “그 흐름으로 가는 과정에 놀이교육이 있다. 이미 교육부는 만 3~5세를 위한 국가 교육과정(누리과정)을 놀이 중심으로 재편했고,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아이들의 놀이를 주목해왔다”고 부연했다.

공교육이 학력과 경쟁에 치중해 놀이를 외면해온 데 대한 반성과 아쉬움도 털어놨다.

“놀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성장의 기본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경쟁과 학력 위주의 사회 속에서 외면받았죠. 야외 놀이터는 획일화되고 복제된 형태로 바뀌었고, 너무 안전해 역설적으로 아이들이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면역력을 길러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놀이의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 교육감은 “놀이 공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역사회에 먼저 알려나겠다”며 “그 마중물의 역할을 제주유아체험교육원이 해나갈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제주=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