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숙현 선수 사건을 계기로 가혹행위를 겪고도 외부에 호소할 수 없는 스포츠계의 폐쇄적 환경이 다시 지적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체육계 내부의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꼬집는다.
5일까지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는 사망 직전까지 외부에 심리적 고통과 피해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전문가들은 가능한 조치를 최대한 했음에도 변하는 것이 없을 때 절망감이 크다고 봤다. 이상민 건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죽음까지 생각한 분들은 마지막 시도조차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게 자살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초등학생 시절 입은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김은희 테니스 코치는 “현재 스포츠 기관들은 ‘가해자를 징계해달라’ 요청하는 곳일 뿐”이라며 “피해자를 보호해줄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경우 사법기관 판단 전부터 당연히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고 조사하겠지만 현실에선 가해자를 직무정지 시키는 것조차 힘들다”고 덧붙였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이사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겨우 용기를 냈는데 아무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아 느꼈을 절망감이 컸을 것”이라며 “사회적 타살이라 볼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내부적으로 문제 해결이 불가능했던 스포츠계의 구조가 최씨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상담환자가 자살위험이 심하다 싶으면 입원치료나 하고 있는 일을 멈추도록 권한다”면서 “이번 경우는 환경상 그런 일이 불가능했던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일보가 입수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최씨는 숙소에서 나오라는 충고에 “선배랑 있어 못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다(국민일보 2020년 7월 3일자 24면 참조).
동료나 주변인들이 2차 가해 우려로 증언할 수 없는 환경도 문제다. 백 교수는 “학교폭력의 경우에도 가해자를 일단 학교에 안 나오게 해야 다른 아이가 입을 연다”면서 “이번 일로 체육계의 분위기가 다른 분야보다 지나치게 낙후된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단죄해서는 영원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면피성 조치만 할 게 아니라 근본적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철인3종협회는 6일 최 선수 사건과 관련해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 여부 등을 검토한다. 최 선수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또다른 피해자들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조효석 이동환 기자